[총리인준 무산 표정]『白紙다 중지해』 『방해말라』

  • 입력 1998년 3월 3일 06시 57분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상정한 2일의 국회본의회는 공개투표 여부를 둘러싼 여야간 대립으로 의원간 몸싸움이 벌어진데 이어 결국에는 투표가 중단되는 등 진통을 거듭했다.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은 오후 3시42분 김종필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상정, 45분부터 투표에 들어갔으나 투표시작 5분여만에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소란은 서쪽 기표소에 있던 자민련 김범명(金範明)의원이 “뭐하는 짓들이야. 투표를 하는 거야 뭐야”라며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자민련 정상천(鄭相千)의원도 합세, “전부 백지야. 중지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후 곳곳에서 “백지투표 하지마” “의회주의를 포기하는 거야”라는 여당의원들의 고성이 난무했다. 야당의원들은 “백지투표인지 누가 봤어. 왜들 그래” “중앙정보부야 뭐야, 백지인지 어떻게 알아”라고 맞받아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오후 3시51분 자민련 이정무(李廷武)원내총무가 소속 의원들에게 “투표를 저지하라”고 지시,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이 본회의장 양쪽 투표용지 및 명패 교부대 앞을 가로막았다. 자민련 이인구(李麟求)의원은 아예 투표함 위에 올라앉아 투표용지와 명패를 넣지못하게 했고 국민회의 한영애(韓英愛)의원은 투표함의 구멍을 두 손으로 가로막았다.

○…이 과정에서 여야의원들의 충돌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김범명의원과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욕설을 주고받으며 육탄전 일보 직전까지 갔다. 김의원은 “누구보고 이녀석이야. 너 누구야, 혼 좀 나볼래”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정의원은 “누구 보고 그러는 거야”라며 맞받았다. 김의원은 분을 삭이지 못한듯 “야, 너 무릎꿇어”라고 소리쳤고 정의원은 “무슨 소리야”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나라당서훈(徐勳)의원과자민련 박신원(朴信遠)의원은 멱살잡이까지 갔으나 주변 의원들이 말려 간신히 주먹다짐은 피했다. 자민련 이원범(李元範)의원은 발언대에 서서 “한두명이면 얘기도 안해, 전부가 백지야.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라고 소리쳤다. 투표함을 막고 있던 한영애의원은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의원이 “왜 투표를 못하게 하느냐”며 밀치자 “이거 성폭행이야 뭐야”라고 소리질러 장내가 한때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소란이 계속되자 김의장은 “투표광경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 의원의 품위를 지켜달라”고 거듭 호소했으나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여당의원들은 김의장에게 “이런 상태에서는 투표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며 정회를 요구했고 김의장은 오후 4시5분경 정회를 선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왜 정회하는 거야. 투표를 재개해” “여기가 아프리카 국회냐”는 등 고함을 질렀다.

김의장은 정회중 3당 총무들을 의장석 앞으로 불러 모아놓고 투표진행이 원만하게 이뤄지도록 협조해줄 것을 요구한 뒤 4시8분경 투표 속개를 지시했다. 그러나 본회의장은 통제불능 상태여서 사실상 투표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기표소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빠져나오는 식으로 사실상 단체 기권투표를 실시했다. 일부 의원은 기표소에 들어가는 시늉만 하고 바로 나오기도 했다. 기표소 앞에 서있던 국민회의 자민련 의원들이 “기표를 안하면 무효다. 반드시 기표하라”고 종용했지만 이런 움직임은 한동안 계속됐다. 한나라당 부총무단인 김호일(金浩一) 이우재(李佑宰) 김문수의원 등이 지켜서서 소속의원들이 기표소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기자들에게 “한나라당 백승홍(白承弘)의원이 투표를 하면서 감표위원인 한영애의원에게 ‘봐라 찍었다’라며 투표용지를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정대변인은 또 “백남치(白南治)의원 등 12명이 기표소에 들어갔다가 커튼도 닫지 않은 상태에서 사인펜도 잡지 않은 채 1,2초만에 나오곤 했다”고 말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의 저지로 투표가 사실상 중단된지 2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5시45분경 한나라당측은 뒤늦게 도착한 이홍구(李洪九)전대표위원 등을 앞세워 투표재개를 시도했다.

이부영(李富榮) 이신범(李信範) 이재오(李在五)의원 등은 여당 의원들이 가로막자 “본인이 투표를 하겠다는데 왜 막는거야” “총리에 대표까지 지낸 어른이 백지투표를 할 것 같소”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여당의원들은 “지금 총무단이 협상중이지 않소. 점잖은 어른이 투표 못할 것 뻔히 알면서 왜 그러시오”라며 막았다.

이 때문에 이전대표를 사이에 두고 여야의원들이 몇차례 밀고당기기를 거듭했다.

한편 김의장은 오후 6시5분경 “정상적으로 투표를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그러나 여당의원들은 여전히 저지선을 풀지 않았다.

○…감표위원인 국민회의 한영애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백지투표 아니냐”며 투표지를 보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투표지까지 보여주면서 투표를 해야 하느냐. 공개투표를 하라는 얘기냐”며 항의했다.

한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 한나라당이 백지투표에서 작전을 바꿔 공개투표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공개투표도 국회법상 위법”이라고 맞고함쳤다.

○…교착상태 내내 의장석에 앉아있던 김의장은 오후10시 “더이상 기다리기 힘들다.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과 만나 최종 협의를 하겠다”며 의장실로 자리를 옮겨 3당 총무회담을 주재했다.

그러나 “불법투표이므로 재투표해야 한다”는 여당측과 “투표를 재개해야 한다”는 야당측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김의장은 10시40분경 본회의장에 돌아와 “11시까지 시간을 줄테니 투표하지 않은 의원은 투표를 마쳐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국민회의 남궁진(南宮鎭) 박광태(朴光泰), 자민련 구천서(具天書)의원 등이 의장석 주변에 올라가 “불법투표인데 왜 투표를 계속하느냐. 깨끗하게 무효선언하고 다시 투표하라”고 다그쳤다. 이에 야당의원들은 “내려와” “의장의 권위를 인정해”라고 고함쳤다.

한나라당 김재천(金在千)의원이 농담조로 “차라리 대통령선거를 다시하자”고 소리치자 국민회의 윤철상(尹鐵相)의원 등이 “무슨 소리를 함부로 하는 거야”라며 흥분, 본회의장은 또다시 난장판이 됐다.

〈송인수·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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