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파탄 책임을 규명하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내린 「특명(特命) 1호」다.
김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는 29일 6개 분과별로 본격적인 정권 인수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재정경제원에 「경제위기 초래에 대한 자체분석」보고서 제출을 요구, 앞으로 인수위의 활동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날 인수위는 이 보고서외에도분과별로 소관 부처에 모두 1백여가지에 이르는 각종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물론 대부분의 자료들은 「일반업무현황」 「98년 업무추진계획」 등 정부 각 부처의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자료들이었다. 전체적인 업무현황을 파악한 뒤 중점적으로 점검할 대상을 꼽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요청자료는 앞으로 인수위의 활동방향은 물론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과 직결된 것들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의 경제위기상황을 반영해서인지 경제분야에 관한 자료에서 두드러진 것들이 많았다.
경제위기 초래에 대한 자체분석보고서도 주목받는 자료 중 하나다. 이는 다분히 현정부가 외환보유고 관리에 실패, 위기를 자초한데 대한 책임규명의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집권 후 국회에서의 「경제청문회」에 대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현정부의 책임당국자들이 자인하는 실정(失政)원인을 일종의 「자아비판」자료로 미리 챙겨 놓는 격이다.
정책분과 간사인 이해찬(李海瓚)의원은 『26일 김당선자가 인수위 현판식에 참석했을 때 현정부의 금융정책 실패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지 않았느냐』며 경제파탄 책임 규명이야말로 인수위에 부여된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또다른 인수위 관계자는 『정부측에서 일단 알맹이 없는 「모범답안」을 내놓겠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추가자료를 계속 요청해 반드시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와 함께 경제1분과에서 통상산업부에 요구한 「통상외교에 대한 분석 및 평가」자료도 경제파탄 책임규명 차원에서 현정부의 통상외교 실패를 정밀하게 점검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정부가 추진해 온 주요 국책사업에 대한 정밀점검과 재조정도 인수위가 안고 있는 중요과제다.
정책분과에서는 이를 위해 국무총리실에 「주요투자사업 및 정책에 대한 연차별 분기별 심사평가보고서」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 자료를 살펴보면 경부고속전철등 새 정부가 재검토해야 할 대형국책사업이나 정부정책을 선별해 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건설교통부에 「사회간접자본 투자계획 평가」자료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과거를 캐묻는 성격의 자료 요구도 있었지만 새 정부의 기본정책을 짜는데 참고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자료요구도 많았다.
통산부에 요구한 「기존 산업정책에 대한 분석 및 향후 구조조정에 대한 산업정책방향」, 건교부에 요구한 「중장기 교통종합대책」 「물관리 일원화대책」, 재경원에 요구한 「98년 예산운용방향」 「신정부 투자시책에 대한 준비상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밖에 주목을 끈 요청자료는 정무분과에서 총무처에 요구키로 한 「정부조직개편 관련자료」다. 새 정부 출범 이전에 단행될 가능성이 높은 정부조직개편 작업이 첫 발을 내딛게 된 셈이다.
한편 안기부 청와대비서실 국방부 등 이른바 권력과 국가안보 부서에 요구키로 한 자료내용에 대해 인수위측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자료가 상당수 포함돼있다는 이유에서다. 제출을 요구한 자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기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밀자료에 대해서는 자료접근 범위도 이종찬(李鍾찬)인수위원장과 해당분과 간사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것이 인수위의 방침이다. 지난 93년초 현정부가 6공정부로부터 국가 주요기밀사항을 인수받는 과정에서 일부 자료가 유출돼 파문이 일었던 기억이 관료사회에 많이 남아 있다. 이같은 경험을 거울삼아서 김당선자측은 현정부가 거부감 없이 주요 자료들을 사전에 내놓을 수 있도록 자체 국가기밀 관리규범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