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새대통령에 바란다]이규민/경제는 경제논리로

  • 입력 1997년 12월 26일 20시 09분


뉴욕 금융시장의 한 투자자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을 「빌보드 차트」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에만 집착하다가 고통이 수반되는 정책에 눈을 돌리지 못해 결국 오늘날 한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이유에서 인기가요 순위(빌보드 차트)대통령이라고 혹평한 것이다. ▼ 월街의 걱정과 주문 ▼ 인기라는 것은 결과이지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지도자가 할 일을 제대로 했을 때 비록 그것이 인기없는 정책이라도 결과가 좋으면 국민의 사랑은 그의 몫이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일들을 해야만 하는 김대중(金大中)당선자는 그런 면에서 홀가분할 수도 있다. 축배를 들 여유도 없이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고난의 연속이어야 하느냐』고 한탄했을 때 그는 이미 59.7% 반대 투표자들로부터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시대 우리경제에 절대적 존재인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가는 아직도 김당선자에 대해 썩 긍정적이지 못하다. 선거기간중 그가 재협상발언을 부인하자 재협상이란 문구가 들어 있는 국민회의측의 국내 신문광고 사본을 내놓고 고개를 흔들던 것이 월가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국가신뢰를 인정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당선후 얼버무리지 않고 선거중 잘 몰라서 한 발언이라며 즉시 생각을 고치는 부분에 대해 상당히 기대하고 고무된 눈치다. 선거때 표를 얻기 위해 제시했던 정치논리들을 이제 빨리 벗어 던지고 경제는 경제논리대로 풀어 달라고 희망하고 있다. 국민 일부의 고통이 눈에 보이더라도 국제규범에 맞는 시장경제논리에 따라 정책을 취해 달라는 말이다. 부실기업이나 부실 금융기관의 구제 같은 인위적 조치나 강제적인 실업축소 방안처럼 훗날 부작용이 더 큰 정책을 포기할 때 대승적 결과가 올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월가의 걱정은 인사에 있다. 김당선자 주변에 경제를 아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한번도 여당을 해보지 못한 새 집권당에 사람이 없는 것은 김당선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의 주변에서 경제통이라고 나서는 사람들의 대부분에 대해 월가의 사람들은 이미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자율경제 개방경제시대인데 지금까지 거론되는 인물들은 과거 관치경제시절 정부에 몸담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사람을 잘 쓰라는 말도 김당선자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는 과거 거국내각을 여러차례 주장했던 사람이다. 인사를 기다려 보는 분위기가 역력히 느껴진다. ▼ 국제규범 맞는 정책을 ▼ 또다른 주문 한가지. 효율적인 국가운영을 위해서 정부기능중 재정금융 같은 전문분야에서는 민간 또는 심지어 외국의 전문두뇌에까지 의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뉴욕의 금융계 인사들은 제언한다. 일찌감치 그렇게 했더라면 경제관료들의 독선적 행동에 의해 빚어진 오늘날의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여소야대를 걱정하는 월가의 여론도 있다. 단순히 야당의 반대에 발목잡혀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좋거나 싫거나 새 야당의 주장을 가슴에 품을 때 정치와 경제의 안정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빚을 진 사람보다 빚을 준 사람들이 더 불안한 시기다. 한국의 도산으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볼 그룹중 하나가 외국의 채권자들이라면 그들이 제시하는 말 한마디에도 김당선자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규민<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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