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을 사흘 반 앞둔 시점에서 15대 대통령 선거의 강력한 경쟁자들인 3당 후보의 마지막 합동 TV토론회가 열렸다.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상황이 나라 전체를 심각하게 긴장시키고 있는 때인 만큼 이 토론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어느 다른 경우보다 높았을 것이다.
물론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사회와 환경 및 문화였다. 그러나 시국이 워낙 비상하다보니 국민은 세 후보로부터 위기 극복의 방략, 더 나아가 구국의 방략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세 후보도 전국적 차원에서의 이 마지막 국민과의 대화를 좌절과 비탄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의혹 파헤치지도 못해 ▼
그러나 결과는 미흡했다. 여전히 현재의 난국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논쟁에 매달렸을 뿐 현실성 있는 창조적 해법을 제시하는 선으로 승화하지는 못했다. 물론 IMF의 통제로 말미암아 우리 정부의 행동반경이 크게 제약되기 때문에 해법 역시 그 테두리 안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성립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위기에 영웅이 나온다는 속담이 말해 주듯 국민적 저력을 발동할 수 있는 큰 정치가다운 경륜이 제시될 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민은 구국의 경륜보다 후보 개개인의 흠을 더 많이 듣게 됐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분명하게 지적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후보에게 흠이 있으면 그것은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자리란 글자 그대로 대단히 중요한 자리이므로 그의 흠은 모든 방면에서 공개되고 분석돼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후보들이 상대방의 흠을 잡는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흠들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는 데 있다. 이번 토론에서 참으로 많은 의혹들이 계속 제기됐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이로써 세 후보에 대한, 그리고 한국정치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의혹은 함께 커졌다. 이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광범위한 대상을 놓고 국회의 청문회와 국회의 국정조사, 그리고 사직당국의 수사가 불가피하게 뒤따를 것임을 예고한다.
이것은 물론 새 정부 출범 이후 정국 전체가 매우 불안해질 것임을 뜻한다. 그렇게 될 경우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구심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국민적 관심이 될 것인데, 이 점에 관한 토론이 부족했다.
그래도 한 가닥 실낱 같은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세 후보 모두 선거 이후 단합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6.25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라고 하는 오늘날의 국가 부도 한 걸음 직전의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려면 정당 정파의 이해 관계를 떠난 거국적 협조체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 후보들 사이에 공통점이 때때로 드러났다는 것 역시 고무적이다. 중요한 정책들을 놓고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견해를 보였다는 것은 그들이 당락에 관계없이 대국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 「선거이후 단합」 약속 기대 ▼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IMF구제금융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경제 파탄으로 압축되어 있다. 이 위기의 파도를 넘느냐의 여부에 한국의 장래는 걸려 있다.
이처럼 비상한 시국은 비상한 지도력을 요청하고 있다. 그동안의 3당 후보 합동TV 토론회는 비상한 시국이 요청하는 비상한 지도력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판가름하지 못했다. 다만 비교우위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시작된 TV 합동토론회의 성과라고 할 수 있으나 앞으로 좀더 개선돼야 할 것이다.
김학준<인천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