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의 부작용을 완화하고 「검은 돈」의 금융거래 차단을 위해 꼭 필요한 입법으로 꼽힌 자금세탁방지법안과 금융실명제 대체법안의 이번 정기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된데 대해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두 법안의 소관상임위인 재경위는 법안심의를 철저히 외면했다. 법안심사소위가 구성됐지만 지난 7월 임시국회때 몇차례 건성 심의를 한 뒤 8월 한차례 공청회를 개최한 것이 전부다. 정기국회에서는 두 법안을 제대로 다뤄 보지도 않았고 재정경제원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다. 재경위 마지막날인 14일 자민련 김범명(金範明)의원 등이 『강경식(姜慶植)부총리가 취임일성으로 금융실명제 보완을 외쳤는데 정부는 법안제출만 해놓고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따졌으나 역부족이었다.
사실 이번 국회는 대선정국의 와중에 회기도 축소돼 주요법안들이 부실 심의될 것이라는 예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행 등 관련기관간 이해가 첨예하게 얽힌 금융개혁법안은 서둘러 처리하면서도 금융거래질서를 깨끗이 하기 위한 자금세탁방지법안 등을 등한시한 것은 정치권이 처음부터 법을 만들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부와 신한국당은 지난 5월말 당정협의에서도 두 법안의 국회제출여부를 놓고 티격태격했다. 특히 두 법안중 자금세탁방지법안은 정치권에 「눈엣 가시」였다는 지적이다. 이 법안은 고액현금거래 기록에 대한 세무관서 등의 열람을 허용하고 뇌물, 공무원의 횡령 배임, 불법정치자금 등의 세탁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골자. 아울러 재계도 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전경련이 갑자기 금융실명제 시행유보를 요구한 것도 금융실명제보완과 한묶움으로 돼 있는 자금세탁방지법안의 제정을 꺼리는 입장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