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탈당, 곧바로 특별담화를 통해 엄정한 선거관리를 선언했다. 이상한 풍경이다.
선거를 앞두고 탈당까지 해야 했던 모습도 그렇지만 특별담화를 발표했다는 사실과 그 내용이 또한 그렇다. 국정에 전념하고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대통령 본연의 직무다. 그것은 대통령의 당적 유무와 관계없이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이며 특별담화까지 발표해가면서 밝힐 일은 아니다.
▼ 냉정해야 할 「매질」 ▼
왜 대통령은 그 본연의 직무 수행 의지를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과장되게 연출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것은 대통령의 의지가 국민과 정치권으로부터 폭넓게 의심받아 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그러한 불신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것인가. 최근 문제가 된 국민신당 지원설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혹 해명 목적이 아니었다면 이번 특별담화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담화 내용 중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선거 위법행위를 단호하게 다스리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그런데 선거 위법행위에 대한 공권력 행사도 사실은 대통령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져야 할 공권력 본연의 직무다. 그것이 왜 이 시점에서 대통령에 의해 새삼스레 결연히 확인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통령의 의지 없이는 본연의 직무가 유기될 수밖에 없는 공권력의 현실을 인정하고 다잡아 가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잘 수행되고 있는 공권력의 위력을 새삼스레 환기시켜 누군가에게 으름장을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인가.
어느 경우에나 국민은 실망스럽고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자의 경우 공권력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때로는 직무 유기도, 때로는 직무 과잉도 할 수 있는 「공권력답지 않은」 공권력의 실상을 입증해 주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 대통령이 화가 나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담화문 중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인신비방 등이 자행되는 풍토를 정화하기 위해 정부의 권한을 총동원할 것」이라는 표현은 최근 정치권의 공세에 대해 대통령이 격앙하여 반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게 해준다.
매는 때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매질은 공정하고 냉정해야 제대로 효과를 낼 수 있다. 화가 나서 매질을 하면 어린애는 반항하게 돼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마찬가지 원리로 공권력은 소리없이 공정하게 작동되어야 하는 법이다.
▼ 선거판 반성 계기로 ▼
과거 공권력의 발동은 특정 정파에 이익 또는 불이익을 가져다주어 오히려 선거의 공명성을 떨어뜨렸다. 이번 특별담화가 눈에 띄게 공권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우려와 반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공안정국의 도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벌써 들린다. 그것이 그저 기우이기를 국민은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대통령 특별담화가 발표된 시점과 그 앞뒤의 정치상황으로 인해 다소 어색하고 이상한 모양새를 띠기는 했으나 그것이 담고 있는 메시지 자체는 중요하고 타당하다. 사실상 폭로와 비방이라는 비열한 방법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선거판의 정치가들은 이번 대통령 담화를 또다시 정략적 차원에서만 이러니 저러니 해석하려 하지 말고 페어플레이와 정책 경쟁을 강조하는 그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공권력 발동이라는 으름장 경고를 받게 된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깊은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장권(숭실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