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력 나눠먹기 「내각제합의」

  • 입력 1997년 10월 29일 20시 13분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대통령후보 단일화와 내각제(內閣制) 개헌에 완전 합의함으로써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 공동집권 가능성이 모색단계에서 실현단계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서로 다른 노선을 추구해온 두 정당이 정권교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를 통해 집권을 모색한 것은 일찍이 우리 헌정사에서 목격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두 정당의 연대는 일단 한국 정치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할 만 하다. 그러나 두 정당의 연대가 국민의 눈에 반드시 긍정적으로 투영되는 것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정권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권력지상주의와 정권을 위해서라면 국민 의사마저 뒷전으로 돌려도 좋다는 냉혹한 정치현실주의는 자칫 정치에 대한 실망과 조소를 확산시킬 수 있다. 이것은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시민 참여민주주의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를 남긴다. 특히 두 정당이 연대의 조건으로 내각제 개헌에 합의한 것은 국가의 권력구조가 일부 정치세력의 거래와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의원내각제가 1인 권력집중에서 오는 폐해를 방지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여당 독주체제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서구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에서도 충분히 증명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 3월28일자 본란에서도 지적했던 바와 같이 우리는 정당간 권력나눠먹기식 내각제 개헌에는 찬동할 수 없다. 국가 권력구조의 변경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각제를 수용할 만한 정치풍토가 정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권력을 담보로 한 어지러운 정파간 합종연횡은 끝없는 정치혼란을 부를 염려가 있다. 이러한 값비싼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국내외적 환경이 너무나 위태롭다는 지적에도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각제를 고리로 한 국민회의와 자민련 연대가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그 이후에 야기될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은 능히 예측되고도 남는다. 공동정권은 집권과 동시에 개헌논의에 휩싸여 국정을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 2년3개월짜리 한시적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레임덕에 빠지면서 마치 노태우(盧泰愚)정권 당시의 중간평가 정국이 보인 혼란으로 치뉵瀯 수 있고 이질적인 두 정치세력의 의심에 가득 찬 불안한 동거는 정책과 자리 배분 등을 둘러싸고 끝없는 갈등을 드러낼 우려가 많다. 21세기를 열어갈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이 내각제 개헌을 위한 과도정권 선출로 변질된다면 이 또한 우리 헌정사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내각제를 고리로 한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정권 구상은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앞세운 정파간의 무원칙한 연대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돼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파간 연대와 이 연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내각제 개헌론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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