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뇌물의 개념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정치인들의 「떡값」이나 「활동비」 등 음성적인 정치자금이 존립할 근거를 상당히 축소시켰다.
재판부는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이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에게서 받은 돈의 뇌물여부에 대해 판단하면서 『공무원의 직무와 금품수수가 전체적 포괄적으로 대가관계에 있으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17일의 전직 대통령 비자금사건 상고심에서의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의 경우 국정수행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특정 청탁이나 구체적 대가성이 없이 돈을 받았더라도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한보사건 재판부도 이같은 판결취지를 그대로 인용, 국회의원의 포괄적 직무관련성을 인정한 것.
재판부는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국회의원의 경우 고유권한으로 법률안 등 각종 안건의 발의 표결권, 본회의 안건의 토론 표결권, 대정부 질문권, 국정감사 및 조사권 등을 갖고 있어 대통령에 미치지는 못하나 국정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한보사건의 성격을 한마디로 『국가적 대재앙』이라며 나머지 정치인과 기업인 은행장들에 대해서도 예상밖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주범인 정피고인에게 『고령에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등 인간적으로 동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나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감안할 때 중형이 불가피하다』며 사실상의 「종신형」에 해당하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정치인과 은행장 등 정피고인에게서 돈을 받은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사회 지도층의 책임」을 강조하며 중형을 선고했다.
특히 「깃털론」을 편 洪仁吉(홍인길)피고인에게는 검찰 구형량(징역 7년6월)과 비슷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다른 정치인 및 은행장들에게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기는 커녕 이를 이용해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꾀한 책임이 크다』며 전원 실형을 선고했다.
〈이수형·신석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