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표 대선자금공개 발언]여권 「속앓이」 갈수록 태산

  • 입력 1997년 5월 2일 20시 07분


신한국당 李會昌(이회창)대표위원이 지난 1일 『92년 대선자금에 대해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놓고 여권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1일 이대표의 문제발언에 대해 즉각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朴寬用(박관용)사무총장과 민주계 원로들이 2일 청와대의 입장에 가세했다. 그러나 이대표는 2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도 자신의 뜻이 변함없음을 재확인했다. 92년 대선자금문제에 대한 이대표의 입장은 △92년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여든 야든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대선자금의 완전한 공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백」차원의 대선자금 입장표명은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4년 전 이야기를 꺼내면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는 얘기냐』며 「입장표명 불가」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또 민주계의 한 의원은 『지금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으로 선회하면 야권 공세에 밀리는 인상을 준다. 대선자금을 고백하면 야당은 아마 속옷까지 벗으라고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당내 대선주자 중 반(反)이회창라인이 청와대측에, 당내 초선의원급이 이대표측에 가담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李漢東(이한동) 朴燦鍾(박찬종)고문측은 2일 『이대표가 92년 대선 때 관여하지 않았다고 「나는 당시 상황을 잘 모른다」며 혼자만 깨끗한 척하는 것은 집권당대표로서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미 『과거의 잘못된 정치에서 파생된 정경유착 등 모든 것에 대해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지난달 16일 이대표와 초선의원 간담회)고 밝힌 당내 초선의원급은 이대표의 입장을 지지할 조짐이다. 이처럼 여권내에 갈등의 불이 번지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대선자금문제로 여권이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게 대부분의 관측이다. 우선 불씨를 던진 이대표가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의 대립을 원하지 않고 있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김대통령의 「그림자」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표는 1일 청와대 주례보고에서 김대통령에게 『1일 정치인과 시민 대토론회에서 밝힌 대선자금 규명 입장은 대선자금의 완전 공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 보면 이대표측은 「대선자금 규명」주장을 통한 「대쪽」이미지 유지와 김대통령과의 관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대표는 1일 저녁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제가 복잡할수록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밝혀 모종의 구상이 있음을 시사했다. 김대통령도 金賢哲(김현철)씨의 사법처리가 매듭지어지는 10일경 이후에 있을 정국수습담화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2일 『무엇보다 김대통령 자신이 대선자금 문제를 밝혀 주기를 바라는 여론의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단 점화된 대선자금의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여부는 김대통령의 정국수습담화내용에 달려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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