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청기자] 최근 정국이 극도의 혼미상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DJ)총재와 자민련 金鍾泌(김종필·JP)총재 사이에서 오고가던 내각제개헌논의가 이제는 신한국당의 대선예비주자들 사이에서 「권력분점론」으로 이름이 바뀌어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 DJ는 갑작스런 「경제기자회견」에 이어 「경제영수회담」을 제의했고 金泳三(김영삼·YS)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이를 즉각 수용했다. 이런 움직임에 JP는 영수회담에서의 내각제개헌 공식거론을 밝히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탄탄해 보이던 DJ와 JP의 「공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오히려 YS와 DJ가 가까워 지는 모양세다.
여권에서도 YS의 탈당과 하야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대선후보 조기가시화발언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대권예비주자들 사이에서 예사롭지 않은 바쁜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재의 극도로 혼미한 정국은 궁극적으로 「3김(金)공존」과 「3김 청산」이라는 정치권 저변의 엇갈린 흐름이 빚어내는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3김공존」과 「3김청산」이라는 두갈래 기류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아직 그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내진 않은 채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 전체를 관류하는 정국의 저류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3김공존」과 「3김청산」은 불가피하게 정국의 「키 워드」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분석은 숙명적 라이벌인 YS DJ JP 등 「3김」의 기묘한 정치적 공생관계에서 출발한다. 「3김」의 정치사는 여러차례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이제 「3김」은 또다시 절박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보사태와 「金賢哲(김현철)파문」으로 최악의 곤경에 처한 YS가 일차적 당사자이나 DJ와 JP도 YS가 무너지면 공멸할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극히 이례적으로 손쉽게 성사된 1일의 여야영수회담은 「3김의 불안감」을 엿보게 하는 단적인 사례다. DJ가 정치문제가 아닌 경제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영수회담을 먼저 제의한 것이나 영수회담에 대해 무척 까다롭게 굴던 YS가 이를 선뜻 수용한 것도 종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이번 영수회담은 3김이 활로를 뚫기 위한 공동모색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DJ는 이미 상처를 입을대로 입은 김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을 최소한이나마 보전하는 것이 「3김시대」의 연장과 자신의 네번째 대선도전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DJ가 국민회의소속 국회한보조사특위 위원들에게 폭로공세를 지양할 것을 지시한 것도 김대통령을 더이상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반면 내각제개헌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는 JP는 DJ에 비해 공세적이다. 김대통령을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내각제개헌 대열에 끌어들이기 위해 최대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듯하다. JP가 경제영수회담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주제와는 다른 내각제개헌문제를 거론한 것도 전략적인 성격이 짙다.
여권내 기류는 갈래를 치기가 더 힘든 측면이 있다. 여권의 대선주자들은 한결같이 「3김청산」을 외치면서도 각자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동상이몽(同床異夢)」식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로서는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李會昌(이회창)대표의 대선방정식은 김대중총재와 일면 상통한 면이 있다. 이대표는 대선이라는 정공법을 통해 3김시대를 청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세대교체를 부르짖어온 朴燦鍾(박찬종)고문이나 金德龍(김덕룡)의원 李仁濟(이인제)경기지사도 3김시대의 연장은 자신들의 정치적입지확대를봉쇄할수 있다는 점을 우려, 내각제개헌에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金潤煥(김윤환)고문은 내각제가 지론이면서도 대선전 개헌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바탕으로 조속한 3김청산을 위해서는 이번만은 대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자는 입장이다.
李漢東(이한동)고문이나 李洪九(이홍구)고문의 생각은 또 다른 것같다. 3김구도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해 자연스럽게 3김시대를 청산하는 방법으로 권력분점론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김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로 귀결된다.
김대통령이 퇴임 후 안전판 마련을 위해 정치권내에 일정한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엔 DJ와 JP와의 공존구도를 구상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김대통령이 취임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천명해온 대로 구시대 정치의 청산을 각오하고 있다면 끝내 「3김의 공동퇴장」을 불사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