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사조직-멤버실태]나사본-동숭동팀등 국정 좌우

  • 입력 1997년 3월 16일 20시 03분


현 정부출범 이후 정치권과 관계 군 등 각계에 포진,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 金賢哲(김현철)씨의 비선조직은 지난 92년 대통령선거를 기점으로 정형화되기 시작했다. 88년 중앙조사연구소 출범에서부터 민주사회연구소로 이어진 현철씨의 인맥이 92년 대선을 거치면서 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철씨의 사조직은 크게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의 청년조직 △동숭동팀(정책팀) △언론대책반 등 세 갈래로 나눠진다. 여기에 현철씨의 학연(중대부중―경복고―고려대)을 중심으로 한 인맥이 가세하고 있다. 신한국당 金武星(김무성)의원이 기획한 나사본은 92년 대선 당시 여권의 대표적 사조직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현철씨와 중대부중 동기생인 朴泰重(박태중)씨가 나사본의 총무국장으로 「자금줄」을 장악했고 지금까지도 현철씨의 「대리인」으로 활동 중이다. 또 나사본 청년사업단(청사단)에서 일했던 전 청와대비서관 K씨, 청와대 C비서관 등 30대 그룹 10여명이 현 정부출범 이후 현철씨의 측근으로 자리잡았다. 동숭동팀(임팩트코리아)은 현철씨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田炳旼(전병민)씨가 학계 관계 등 50여명의 인사로 구성한 정책자문팀. 이 동숭동팀은 정치 행정 경제 반부패 등 14개 분과로 나눠 2백여차례의 세미나를 갖고 대선직전 YS에게 「국정개혁프로그램」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숭동팀에는 金悳(김덕)전안기부장 韓昇洲(한승주)고려대교수 鄭鍾旭(정종욱)주중대사 廉弘喆(염홍철)공항공단이사장 朴在潤(박재윤)전통상산업부장관 등이 대표적인 멤버들이다. 이들은 현 정권출범 이후 모두 중용됐다. 그날그날의 언론논조를 분석한 정국대응방안을 건의, YS의 각별한 신임을 얻었던 언론대책반은 30대의 李性憲(이성헌)신한국당 서대문갑위원장 등 10여명이 움직였다. 집권이후 현철씨의 인맥은 국정의 주요기관에 집중적으로 포진되기 시작했다. 안기부에는 金己燮(김기섭)전운영차장을 비롯해 국장급 2,3명이 현철씨 라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李源宗(이원종)전청와대정무수석을 비롯해 사정2비서관(현 공직기강비서관)출신의 李忠範(이충범)씨와 김무성의원 洪仁吉(홍인길)의원 金佑錫(김우석)전내무장관 등이 현철씨와 특히 가까운 정치권인사. 또 관계와 재계에도 현철씨의 인맥이 상당수 포진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철씨의 사조직은 대외적인 노출을 가급적 피한채 철저히 「점조직」식으로 운영돼온 것이 큰 특징. 현철씨의 대외적인 공식기구는 현철씨가 개인사무실로 사용했던 서울 종로구 중학동 미진빌딩과 회장직을 맡고 있는 유엔한국청년협회(UNYA)의 두 곳. 공식적인 통로로 통했던 미진빌딩에는 수행을 맡은 N씨 등이, UNYA에는 2,3명의 실무진들이 각각 현철씨의 대외활동을 지원했다. 기타 활동은 특정 사무실을 거점으로 하기보다는 주로 시내 L,P호텔의 객실에서 「1대1 면담」을 통해 이뤄졌다. 현철씨 캠프는 이같은 사조직활동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95년 10월경 사조직을 통폐합, 법인형태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본보 보도로 알려지자 현철씨측은 사조직의 법인화계획을 포기했다. 당시 이 법인에는 현철씨와 가까운 시사평론가 K씨와 일부 교수 등이 참여할 계획이었다. 〈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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