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수사/與圈 폭로전 속셈]『가만있으면 덮어쓴다』

  • 입력 1997년 1월 30일 20시 09분


신한국당이 30일 한보사태와 관련한 야당정치인들의 연루의혹을 공식제기함으로써 정치권의 폭로전이 이전투구 양상을 띠고 있다. 姜三載(강삼재)사무총장은 『오늘 발표는 전주곡에 불과하다. 앞으로 야당의 자세 여하에 따라 대응수위를 조절할 것이다』고 말해 추가폭로가 뒤따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신한국당의 이날 폭로는 청와대와 긴밀한 협의 끝에 이뤄졌다. 신한국당의 폭로내용은 당지도부에 대외비로 배포된 「한보부도관련 유언비어 종합」이라는 문건을 근거로 한 것이다. 외부에서 작성돼 당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엔 야당인사들의 실명과 함께 구체적인 한보관련 연루의혹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폭로가 구체적인 증거에 바탕한 것은 아닌 것같다. 발표자인 金哲(김철)대변인도 『의혹을 받고 있는 야권인사의 이름과 구체적인 혐의는 모른다.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발표했을 뿐이며 첩보차원이다』고 한 발 뺐다. 그동안 야권의 의혹제기에 「무책임한 유언비어 유포」 「인민재판식 정치공세」라고 비난해오던 신한국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비슷한 방법으로 「맞불」을 놓은 데에는 몇가지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첫째, 국면전환과 비난분담 의도다. 계속 수세에 몰릴 경우 한보사태와 관련한 여론의 비난을 온통 여권이 뒤집어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세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둘째, 신한국당의 역공은 여권의 장기적인 구상과도 관계가 있다. 여권주변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정계개편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대적인 정치권사정은 정계개편을 위한 정지작업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셋째, 국회전략의 일환이다. 파문의 조기진화를 원하고 있는 신한국당은 「속전속결(速戰速決)」방침에 따라 조속한 임시국회 소집을 원하고 있다. 국정조사특위의 활동기간도 야권보다 짧게 잡고 있다. 이날 고위당직자회의 후 김대변인은 『야당이 국회(소집)에 전혀 뜻이 없는 것같다는 것이 우리 당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신한국당의 폭로엔 지연전술을 쓰는 야당을 자극, 하루빨리 국회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거기엔 야권의 장외투쟁 방지 등 행동반경을 제한하려는 고려도 깔려 있다. 넷째, 원내전략과도 관계가 있다. 즉 신한국당의 역공은 국회가 열리면 야당의원들이 면책특권을 이용, 여권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무차별 폭로전으로 나올 것을 예상한 「위협사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한국당 폭로의 감정적 동기는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가 『대통령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김대통령 방일중에 나온 이 발언에 여권관계자들은 김총재를 「김씨」라고 호칭할 정도로 극도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폭로경위나 배경이 어떻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집권당의 폭로는 야권의 폭로와는 무게가 다르며 그만큼 폭로에 따른 책임도 무겁다. 이례적으로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나온 폭로라는 점에서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林彩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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