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부도로 본 역대 권력형비리]대부분 흐지부지 처리

  • 입력 1997년 1월 26일 20시 08분


[林奎振 기자] 권력이 개입했거나 개입 의혹이 제기됐던 경제비리사건은 5,6공시절 꼬리를 물었다. 권력실세(實勢)가 직간접으로 개입한 것도 있고 권력층의 위세를 업고 비리를 저지른 경우도 많다. 이런 사건들은 끝내 곪아터져 실체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국민들의 의혹을 씻어주지 못하고 몇명의 희생양만 만든 채 흐지부지됐다. 지난 80년 집권한 全斗煥(전두환)씨와 뒤이은 盧泰愚(노태우)씨는 재임기간중 끊임없는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張玲子(장영자) 李哲熙(이철희)사건, 명성사건을 비롯해 크고 작은 경제비리로 얼룩진 것. 전씨와 노씨는 권력형비리의 최종배후자였음이 추후에 드러났다. ▼장영자사건▼ 지난 82년에 터진 권력형 금융비리의 전형.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권력을 등에 업고 은행돈을 마구잡이로 갖다썼다. 장씨는 형부이자 전두환씨의 처삼촌인 李圭光(이규광)씨를 배후세력으로 삼아 희대의 어음사기극을 벌였다. 장씨는 대화산업이란 회사를 차려놓고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의, 빌려준 돈의 2배에 달하는 견질어음을 받아냈다. 견질어음을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조성한 자금을 은행에 예금하고 거액의 자금을 인출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무려 3천억원을 조성, 장안의 사채시장을 휘어잡았다가 끝내 사건이 터져 금융시장과 경제를 일대 혼란에 빠뜨렸다. 이 사건은 금융실명제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장씨 부부와 이규광씨 林在琇(임재수)조흥은행장 孔德鍾(공덕종)상업은행장 邊康雨(변강우)공영토건사장 朱昌均(주창균)일신제강회장 등 30여명이 구속됐다. 그러나 당시 배후인물로 지목된 최고위층 인사들은 대부분 검찰수사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명성사건▼ 79년 부도를 내고 쫓겨다니던 金澈鎬(김철호)씨는 어느날 갑자기 재벌그룹회장으로 급성장했다. 그 배경은 83년 6월 국세청의 전면적인 세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김씨는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金東謙(김동겸)대리와 짜고 은행의 사채성예금 1천1백38억원을 변칙적으로 조달했던 것. 김씨와 尹子重(윤자중)교통부장관이 구속됐고 명성그룹은 법정관리로 넘어갔으며 朱仁基(주인기)상업은행장이 경질됐다. 당시에도 전두환대통령 측근의 개입설이 난무했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수서비리사건▼ 여당과 야당은 물론 청와대 등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는 총체적 비리사건으로 90년말에 드러났다.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총회장은 당시 수서지구 자연녹지 3만5천5백평을 매입한 뒤 주택조합에 넘겼다. 정총회장은 청와대와 정치권에 강력한 로비공작을 벌여 주택조합에 택지특별공급이 이뤄지도록 한 것. 이 사건으로 정총회장 張炳朝(장병조)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李台燮(이태섭)민자당의원 李元湃(이원배)평민당의원 등이 구속됐다. ▼한보철강 사건▼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4조9천억원의 돈을 어떻게 빌릴 수 있었는지에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도 권력실세들의 비호 없이 은행만의 판단으로 천문학적인 대출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정부나 여당측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의혹이 속시원하게 풀릴 것인지, 아니면 다음정권이 풀어야 할 과제로 넘겨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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