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부대에서 나온 「백소령」을 사칭한 40대남자가 경기 화성군 육군 모사단 해안초소에 나타나 근무자를 귀신에 홀리듯 속인 뒤 총기를 탈취해간 사건은 한 편의 미스터리극을 연상케 한다.
범인은 3일 밤 11시20분경 바닷가를 따라 쳐져 있는 해안초소철조망을 통해 소초후문으로 유유히 들어왔다. 40명이 근무하는 소초에는 평소 정문에만 경계병이 있고 후문에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
범인은 내무반을 둘러보고 『수고많다. 나는 수도군단에서 전입한 백소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지형숙지를 위해 해안순찰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군복차림인데다 말씨나 행동이 의젓해 모두 일어서 거수경례까지 했다.
20여분간 3소대장인 南廷勳(남정훈·23)소위로부터 천연덕스럽게 책임구역 지형상태 근무인원 등에 관해 브리핑까지 들었다. 남소위는 「계급에 눌린데다」 범인이 중대행정관인 모하사를 잘 안다고 너스레를 떠는 바람에 거의 의심 하지 않았다.
범인은 『해안순찰은 아무래도 위험하다』며 총을 달라고 요구했다. 남소위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고 하자 『근무교대시간 아니냐. 이 지역은 전에 근무한 적이 있어 괜찮으니 병력을 교대한 뒤 천천히 따라와 순찰로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남소위가 K2소총과 실탄을 건네주자 범인은 이를 받아 어둠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가 이날밤 11시50분경으로 총기탈취 사기극은 이렇게 30분만에 별다른 의심없이 이루어졌다.
4일 오전 1시30분경 5중대장이 순찰을 나오면서 어이없는 총기탈취사실이 드러났다. 남소위가 『군단에서 전입온 백소령이 총을 가지고 순찰을 나갔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보고하자 5중대장의 안색이 돌변했다.
각 보초지역에 인터폰으로 확인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연락뿐이었다. 대대에 「총기탈취」보고가 접수된 4일 오전 1시40분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연대 사단본부에서 화성경찰서 서신파출소(오전2:55)→화성경찰서(오전3:00)→경기경찰청(오전3:13)을 거쳐 수원 화성 평택 용인 안성 등지에서 수도권과 전국으로 상황은 전파됐다.
범인이 부대에서 도주한지 1시간50분, 부대 인근지역에 진돗개하나(작전훈련상황)가 발령된지 4시간20분이 지나서였다.
『범인이 숨기에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탄식이 군관계자로부터 터져 나왔다.
〈화성〓朴鍾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