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회고록발췌8]권력의 갑옷 벗고 거친 황야로…

  • 입력 1996년 12월 20일 08시 15분


「6.29선언」이 발표됐다. 엄청난 환호가 선언을 뒤따랐다. 노대표는 자신의 강력한 라이벌이 될 김대중씨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직선제를 포함한 8개항에 달하는 엄청난 약속을 선언문속에 담았다. 훗날 「6.29선언」이라고 명명된 그 선언은 진실로 혁명적이었다. 언론들은 모든 민주화요구가 포함된 함량만점의 선언이라고 했다. 40년 헌정사속에 누적된 과제를 단번에 해소시킨 명작이라고도 했다. 국민들과 야당은 물론 외국언론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규제가 풀린 김대중씨도 노대표에게 인간적인 신뢰감을 느낀다고 환희의 일성을 보탰다. 하나의 선언이 국민 야당 언론을 그토록 단번에 감격시킨 예는 없었다. 한 개인의 선언이 그토록 완전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사회를 흥분시킨 적은 없었다. 더구나 그 선언이 여당의 대통령후보에 의해 발표되었다는 형식의 파격이 국민들을 매료시켰다. 통속적 기득권자일 수밖에 없는 여당의 대통령후보가 그토록 대담하고 용감한 개혁을 스스로 부르짖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국민들 가슴에 심어진 노대표의 인상은 그래서 더 파격적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독창성, 민의를 올바로 읽어내는 정교한 현실감각, 시국의 극한상황을 적기에 풀어나가는 세련성, 이 모든 찬사가 노대표의 것이었다. 그 찬사는 그럴 만했다. 그 선언은 국민과 야당이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그 시절로서는 거의 완전한 명작, 완전한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선언은 한사람의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다. 정치적 영웅이 탄생하는 방식으로는 그 이상 더 완벽하고 더 신선한 방법이 다시 없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은 일시에 사라졌고 거리위로 떠오른 6월의 창공은 쾌청이었다. 그분의 희생이 6월 아래서 뜨겁게 찬란하게 열매맺고 있었다. 야권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그분 예상대로 네사람의 후보, …1노3김의 혈전이 시작됐다. 치열한 대통령선거전이었다. 선거과정은 상처가 많았다. 후보도 국민도 출신도별로 나누어진채 싸웠다. 선거속에는 언제나 사람과 이념이 만들어내는 공허한 말들, 약속들, 냉혹함들이 있다. 그러나 선거속엔 또 눈부신 것들도 살아 있다. 사람의 집념과 신념이 만들어내는 정열 활력 생명력들이 그것이다. 노후보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골고루 득표했다. 그는 추격자 김영삼후보보다 2백만표를 더 얻어냈다. 2백만표라니, …언론들도 놀란 압승이었다. 야권은 후보단일화에 실패했고, 국민의 선택은 분산됐다. 언론은 후보단일화라는 최고의 처방을 외면한 두김씨를 비난했다. 선거의 승자는 단번에 영웅이 된다. 압도적승리를 얻은 승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 해 선거의 승자인 노태우당선자는 단번에 영웅이 됐다. 모든 뉴스가 그들의 번쩍이는 촉각과 보도능력을 노태우당선자를 향해 쏟아부었다. …1987년 12월17일의 일이다. ▼ 『나보다 행복한 사람 없다』 ▼ 그날 처음 우리정치사도 현직대통령과 대통령당선자가 나란히 공존하는 정치의 중요한 한 전형(典型), 필연적인 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정치사에서 어떤 공화국, 어떤 통치자도 권력이양기에 생기는 이 당연하고, 상식적인 통과의례를 경험하지 못했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최초로 현직대통령과 대통령당선자가 나란히 공존하게 된 그날은 우리의 정치도 제대로 된 순환을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기념비적 시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날밤 그분은 혼자 대취했다.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날 그분은 기꺼이 혼자 취했다. 『여보. 이세상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거요』 노후보가 당선된 일은 그분에겐 참 많은 것을 의미했다. 운명은 그분을 감히 꿈꾸어보지도 못했던 대통령이란 자리까지 밀어붙였다. 맡기도 어려운 자리였지만, 떠나기는 더욱 어려운 자리였다. 그자리에 맡겨질 때 운명이 그토록 맹렬하게 그분을 밀어붙였듯이, 그자리를 떠날 때도 인간의 의지나 신념이 아닌, 보다 더 높은 차원의 힘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노후보의 당선은 그분에게는 이제 홀가분하게 그자리를 떠날 수 있다는, 떠나도 좋다는 가장 확실한 운명의 결재, 운명의 허락을 의미했다. 노후보의 당선속에서 그분은 바로 그의미를 읽었다. 그것이 그분을 감격하게 했고 홀로 취하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그분은 바로 그일을 수십년간 최고의 우정을 나눈 친구와 손을 잡고 함께 성취해냈다는 깊은 감회에 말을 잃었다. 그것은 그분과 노후보, 두사람의 개인사속에선 참으로 감격할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정이, 컴컴하고 미로같이 복잡한 정치라는 토양위에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주고받을 만큼 그렇게 기적의 꽃을 피운적은 없었다. 어떻든 그일은 두사람 개인사에 있어선 … 우정의 절정을 의미했다. 아니, 그날 그분은 그것이 우정의 절정이 아니라 우정의 완성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와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정의 「절정」이지 「완성」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것은 절정에 이른후 비로소 제모습을 드러낸다. 그분과 노후보가 나눈 우정이 바로 그 눈부신 절정에서 안타깝게도 몰락을 시작하지만 당사자인 그분은 그것을 알지못하고 있었다. 『나는 파산상태의 나라를 건져내기위해 인기없는 일을 너무 많이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나 노태우는 달라. 태평성대를 이룰거야』 그분이 말한 태평성대란 국가의 이상인 목가적 안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날 그분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시간은 그분과 노태우 당선자에게 각각 다른 배역을 맡길 것이라는 사실을. 그분은 파산에 직면한 나라를 상속받았었다. 박대통령시해사건이 그당시 나라의 정신적 육체적 파산을 잘 상징해주고 있었다. 거덜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느라, 더 고상하고 세련된 가치에 미처 손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까지가 시대가 그분에게 맡긴 역할이었다. 열정을 바친 올림픽도 그즈음에서 손을 떼고 미련없이 떠나야하는 것이 시대가 허락한 그분 역할의 한계였고 그점에 대한 그분의 인식도 단호한 것이었다. 『케네디가 죽고도 미국은 변함없이 굴러갔어.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독선이야』 ▼ 소영아빠 믿고 떠났건만 ▼ 이것이 정권교체를 준비하면서 그분이 자신과 가족에게 준 당부였다. 그날밤 기분좋게 취해 자리에 누운 그분은 마치 오랜 출장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절반의 여독과 절반의 기쁨이 그분을 감싸고 있었다. 그 모습 속에서 난 우리의 시간을 보았다. 그분은 누운채 어둠속에서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곧 귀향의 시간이라고.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소. 우리당에서 후임대통령이 나오고 그가 친구라고해도 퇴임후 반드시 안락한 생활이 마련되어 있다는 보장은 없소. 권력이란 더러운 것인데다, 권력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첫경험인 만큼 누구도 퇴임대통령이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실험적 상황이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주던 권력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황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오. 이제 부터 권력이양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인가를 우리 스스로 알아야하는 한가지 관문이 더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분은 엄숙하게 말하고 있는데 권력의 비정을 실감할 수 없었던 난 그말을 감미롭게 듣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분의 그말을, 권력을 내주고 떠나는 사람의 겸손이나 여유쯤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여보.당신이 그토록 믿어온 소영아빠가 새 대통령이 되실텐데 무슨 걱정이세요』 그분의 당부에 대한 내 이 철없는 화답을 보라. 내가 그날밤 그토록 낙천적이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즈음 난 벌써 연희동 옛집으로 돌아갈 기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래도 그분이 준 한마디 말이 밤새도록 내 가슴속깊이 남았다. 『이제 우리는 권력의 갑옷을 벗어버리고 황야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오』 왜 하필이면 그분은 「연희동집」이라고 말하지 않고 「황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분의 짧은 충고가 예언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게된 것은 백담사 단칸방에서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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