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서 70명 대피 도운 ‘영원한 해병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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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 해병대구례전우회 회원들… 보트 타고 위기의 주민들 태워
“내 식당도 잠겼지만 생명이 우선”

정일 씨(왼쪽) 등 해병대구례전우회 회원 3명이 8일 2∼3m가량 물에 잠긴 전남 구례읍 저지대에서 주민들을 구조해 안전지대로 데리고 오자 119구조대원이 보트를 끌어당기고 있다. 이들의 구조 활동은 도움을 받은 주민
 70명에 의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위에 알려지게 됐다. 해병대구례전우회 제공
정일 씨(왼쪽) 등 해병대구례전우회 회원 3명이 8일 2∼3m가량 물에 잠긴 전남 구례읍 저지대에서 주민들을 구조해 안전지대로 데리고 오자 119구조대원이 보트를 끌어당기고 있다. 이들의 구조 활동은 도움을 받은 주민 70명에 의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위에 알려지게 됐다. 해병대구례전우회 제공
집중호우가 쏟아졌던 8일 오전 8시 전남 구례군 구례읍의 구례5일시장 인근의 봉성식당. 갑자기 식당 안으로 물이 들이닥치자 업주 정일 씨(46)가 침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고, 경찰은 위험하니 피신하라고 했다.

이날 오전 9시경 정 씨가 인근 고지대로 대피하는 순간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구례읍 곳곳이 잠겼다. 해병대전우회 보트로 주민들을 구해 달라.” 구례읍사무소에서 전화로 주민들이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전남지역 호우 피해액 4096억 원 중 1903억 원이 발생할 정도로 구례군은 집중호우의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다. 특히 구례지역 침수 주택과 상가 1562개동 중 77%인 1208개동이 구례읍에 위치했다. 구례읍사무소에서의 구조 요청 당시 읍내 저지대는 이미 2, 3m 물에 잠긴 비상 상황이었다.

미처 대피를 못한 노약자 등은 아파트 옥상 등으로 급한 대로 피신했다. 구례읍사무소 관계자는 “119와 구례군 등은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됐고 인명 구조가 시급하다고 판단해 해병대전우회에 구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회원이 25명인 해병대구례전우회는 1989년 결성돼 이 지역 일대에서 방범활동과 교통정리 등의 봉사활동을 해왔다. 2002년부터는 보트로 수상 인명 구조와 수상쓰레기 제거 등도 하고 있다. 전우회 총무인 정 씨는 구조 요청 전화를 받자마자 전우회 회장 조연호 씨(59·회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트를 수소문했지만 조 씨가 이날 아침 구례읍 외곽에서 주민 6명을 구조하던 과정에서 부유물에 보트가 걸리면서 엔진이 고장 난 사실을 알게 됐다. 정 씨와 조 씨는 “노를 저어서라도 주민들을 구조하자”며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8인승 보트가 구례5일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정 씨와 조 씨는 구조작전에 돌입했다.

우선 장안아파트에 있던 주민 3명부터 구했다. 이들 중 1명은 몸이 아픈 환자이어서 구조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전우회 후배인 주광석 씨(39·회사원)가 뒤늦게 합류해 함께 노를 저었다. 정 씨 등 3명이 5일시장 주변을 오가며 보트로 구조 활동을 할 때 한 50대 남성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만삭인 딸과 한 살배기 손자를 구해 달라”고 외쳤다. 이들은 물에 잠긴 아파트로 가 만삭의 임신부와 아이를 구했다. 또 인근 원룸에서 한국말을 못해 도움도 제대로 요청하지 못하던 외국인 근로자 2명도 구조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 원룸 창문에 얼굴만 내민 채 애타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정 씨 등 3명은 이날 오후 6시까지 구례읍 아파트와 원룸 곳곳을 돌며 주민 70여 명을 구조했다. 약 8시간 동안 식사를 걸렀고 간단한 간식과 물만 마시며 구조 활동에 몰두했다. 다른 전우회 회원 5명은 안전지대에서 이재민을 분류하고 교통정리를 하는 등 작업을 도왔다.

정 씨는 16일 식당에서 에어컨 등을 꺼내 말리며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 씨는 “생계 터전인 식당이 물에 잠겨 잠시 충격이 컸지만 그 당시에는 주민 구조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병대전우회는 사명감을 갖고 항상 지역사회에 봉사할 각오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구례=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집중호우#해병대#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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