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호랑이’라던 IMF아태국장, 한국인이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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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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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ADB수석이코노미스트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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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는 (조선총독부의) ‘총독’이라고 불렀죠. 올 때마다 하도 간섭하고 시키는 게 많아서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획재정부 최희남 국제금융정책국장은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국제통화기금(IMF) 담당 사무관이었다. 최 국장은 당시 한국의 구제금융을 위한 협상실무를 진두지휘하며 한국에 혹독한 구조개혁을 요구했던 휴버트 나이스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을 ‘점령군 수장’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짧게 깎은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나이스 국장은 장미셸 캉드쉬 당시 IMF 총재와 더불어 한국에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방한할 때마다 공항에서부터 깍듯하게 영접했다. 또 벼랑 끝에 몰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이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구제금융 조건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량한 친구처럼 보이는 나이스 국장의 얼굴이 외환위기 땐 마치 호랑이처럼 보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그렇게도 한국을 떨게 했던 나이스 전 국장의 역할을 이젠 거꾸로 한국인이 맡게 됐다. IMF는 17일 연말에 은퇴하는 아누프 싱 아태국장의 후임으로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53·사진)를 지명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지명자는 서울대 교수를 거쳐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후에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ADB에서 활동하는 등 실무경력이 많아 ‘현실참여형’ 경제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인이 IMF 아태국장에 지명됐다는 소식에 IMF 체제를 경험한 베테랑 경제관료들은 한목소리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 지역 등의 경제조사 및 감시, 금융지원을 담당하는 아태국은 IMF의 5개 지역국 중 하나이며 아태국장은 총재와 4명의 부총재에 이어 실무급 최고위직으로 평가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나이스 전 국장이 한국에 그러했듯이 아태 지역 내에 경제위기에 몰리는 나라가 생기면 고강도 구조개혁과 정책 권고를 통해 그 나라 경제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또는 한국계로 국제금융기구 고위직에 오른 사례는 정부 파견직을 제외하면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내년 임기를 시작하는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있다.

이 지명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데다, 현오석 부총리가 추천서를 써주는 등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이런 영광을 얻게 됐다”며 “아시아 경제가 앞으로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종=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이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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