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웅 전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식문화는 인류의 문화변동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요소 중 하나”라며 “‘자연재배’로 눈을 돌리는 일부 농업계의 움직임은 그런 면에서 하나의 문화적 진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평생 인류학을 공부하다 퇴직 후 되돌아보니 다음 세대의 가장 걱정되는 문제가 ‘먹거리’더군요. 현대인들은 우리의 먹거리가 건강한 것인지,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무 감각이 없어요. 싼 것, 부드러운 것, 달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만 찾지요. 그 과정에서 인류의 몸이 얼마나 악화되는지는 몰라요.”
지난달 29일 이문웅 전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70·사진)를 만났을 때 그는 자연음식과 자연재배법, 현대 음식의 진실을 파헤친 서적을 몇 권 들고 있었다. 이 교수가 꺼낸 아이패드 안에는 그가 지난 한 달간 아내와 일본 각지를 돌며 촬영한 일본 자연재배 농장의 사진과 자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자연재배’란 마치 숲에서 나무가 자라듯 아무것도 인위적으로 주지 않고 자연의 힘만으로 작물을 기르는 재배법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인 셈. 이 때문에 자연재배는 동물의 분뇨(유기비료)를 통해 작물을 키우는 유기농법과도 엄연히 구분된다.
이 교수는 “인간들이 너무 오랫동안 비료와 농약, 살충제를 써서 작물을 길렀기 때문에 이제 작물들은 더는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지도, 스스로 에너지를 흡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기농 역시 인간의 인위성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자연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일본에서는 10년에 걸쳐 땅의 ‘비독(비료 독성)’을 제거한 끝에 자연재배에 성공하는 농가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일본에 가 이런 농가를 방문해 땅을 만져 보니 그 흙이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러워 땅을 따로 갈 필요도 없었다”며 “이렇게 자란 사과나무, 벼 등은 뿌리가 깊고 껍질이 단단해 농약을 치지 않아도 해충이나 벼멸구 피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니가타 현의 자연양계 농장에서는 닭장에 닭을 가둬 사료를 먹이는 게 아니라 땅에 풀어 쌀겨와 풀을 먹이고 조개껍질을 빻은 것으로 칼슘을 섭취하도록 하고 있었다”며 “이 계란은 조직이 아주 단단하고 노른자가 마치 골프공처럼 탱글탱글하게 우뚝 서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작물은 상당히 비싼 값에 일본 전역으로 판매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이시카와 현 같은 경우에는 현 전체가 자연재배 농법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농가들에도 자연재배가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농학박사 출신 송광일 씨가 광주 광산구 양산동에서 운영하는 복숭아농장이 자연재배 농법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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