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테러로 아내 잃고 신장병 앓던 라스무센 씨
투석 미룬채 추모식 참석… 사흘 만에 아내 곁으로
신장병을 앓던 플로이드 라스무센 씨는 14일 9·11테러로 사망한 아내의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지 사흘 만에 숨을 거뒀다. 추모식에 오느라 혈액투석을 받지 못한 그는 “이번 여행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
플로이드 라스무센 씨(69)는 9·11테러 10주년 추모식 참석을 위해 9일 워싱턴에 왔다.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인공투석을 받아야 하는 그가 미국 서부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동부의 워싱턴까지 여행을 간다고 하자 의사는 극구 말렸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아내를 기리는 추모의 장소에 반드시 함께 있고 싶다”고 했다. 결국 워싱턴 여행을 마친 뒤 11일 포틀랜드 집으로 돌아간 그는 사흘 만에 신장병 악화로 숨을 거뒀다.
16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9·11 테러 당시 45세였던 그의 아내 론다 씨(사진)는 펜타곤(국방부 청사)에서 예산 분석가로 근무하다 테러범들이 탄 비행기가 펜타곤에 충돌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펜타곤 인사부서에서 근무했던 라스무센 씨는 다행히 건물에서 일찍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아내는 펜타곤 사망자 184명 중에서 끝까지 유해가 확인되지 않은 5명 중 한 명이었다.
라스무센 씨는 자신만 살아남은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듬해 아내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여성 브렌다 씨와 재혼했다. 하지만 전 부인을 잊지 못하는 그는 재혼 생활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결국은 카운슬링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 브렌다 씨는 전 부인에 대한 남편의 사무친 그리움을 알기에 그의 워싱턴 여행을 반대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남편과 함께 워싱턴에 동행했다.
펜타곤 추모식에 참석한 라스무센 씨는 인공투석을 받지 못해 힘든 상태임에도 웃는 모습이었다. 그는 “대통령과 국민들이 9·11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펜타곤 메모리얼에 마련된 전 부인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를 쓰다듬으며 “테러범들에 대한 분노도 잊기로 했다”고 했다.
포틀랜드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라스무센 씨는 숨을 가빠 하며 힘들어했지만 “이번 여행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해조차 찾지 못한 아내를 이제야 편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됐다”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여행이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마지막 생을 정리하려는 듯 이틀 동안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전화를 했다. 13일 밤 잠자리에 든 후 그는 다음 날 눈을 뜨지 않았다.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아내를 그리며 ‘마지막 여행’을 마친 그는 이제 아내 곁으로 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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