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美 카네기홀 공연 성황 인순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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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美참전용사들 내 노래 듣고 눈물… 나도 함께 울었다

관객들, 노병들에게 갈채… 뜨거운 반응에 나도 깜짝
얼굴색 다른게 어쨌다는 건가… 내 노래 99%는 노력

한국 가수로는 네 번째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선 가수 인순이. 1999년에 이어 두 번째 카네기홀 공연을 마친 그는 “데뷔 후 30년 동안 경험한 몇 안 되는 뿌듯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1979년 ‘원조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희자매’로 데뷔한 그는 “지금 내 경쟁 상대는 젊은 걸그룹들”이라며 “옛날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나이 들어도 멋지게 노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한국 가수로는 네 번째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선 가수 인순이. 1999년에 이어 두 번째 카네기홀 공연을 마친 그는 “데뷔 후 30년 동안 경험한 몇 안 되는 뿌듯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1979년 ‘원조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희자매’로 데뷔한 그는 “지금 내 경쟁 상대는 젊은 걸그룹들”이라며 “옛날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나이 들어도 멋지게 노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이달 4, 5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마치고 21일 귀국한 가수 인순이(53)의 얼굴은 아직도 상기되어 있었다. “데뷔 30년 동안 숱한 공연을 했지만 이렇게 여운이 오래 남는 공연은 몇 번 안 됐던 것 같아요.”

객석의 70%만 채워도 전설로 남는다는데 4일은 만석, 5일은 90%를 채웠다고 한다. 그는 마치 공연을 재연이라도 하듯 말과 노래를 순서대로 섞어가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흥얼대는 모습을 보니 천생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중 최대 화제가 되었던 6·25 참전용사 초청 이야기부터 꺼냈다.

“가기 전에 107명의 미군 참전용사와 16개 참전국 주미대사들을 초청했다. 대부분 부부 동반으로 군복을 입고 오셨다. 80줄에 들어선 노인들을 뵈니 ‘내 아버지도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늙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역을 통해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입니다. 이름도 잘 모르는 이국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신 여러분의 희생정신 덕분에 제가,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순간 전 관객이 늙은 군인들을 향해 힘찬 박수를 보냈다.”

단지 개인적인 한(恨)을 풀기 위해 말한 것인데 의외의 뜨거운 호응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1957년 경기 포천에서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얼굴조차 모른다. 그는 2007년 12월 서강대 특강에서 “열 살이 넘어 내가 혼혈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아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의 시선은 우리를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동생은 아예 이민을 가버렸다. 나는 끝까지 버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어머니 마음이 아플까 싶어 ‘아버지’라는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그가 이제는 ‘아버지’를 제목으로 한 노래까지 부르게 됐다. 50을 넘긴 나이가 가져다주는 힘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디바로 성공한 자신감의 발로일까.

“모든 일이 계획되거나 내켜서 된 것은 아니다. 사실 ‘아버지’ 노래도 (안 부르려고) 도망다니다 녹음한 노래다. (부르다) 울까 봐 두려웠다. 이번에 참전용사 초청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주름진 군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안의 슬픔보다 그분들에게 혹 있을지도 모를 슬픔이 전해졌다. 말 한마디, 노래 한 자락으로라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공연 중에 얘기해 화제가 됐던 “전쟁 통에 나 같은 자식을 두고 떠난 뒤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제 내려놓으셔도 좋겠다”던 말은 그런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앞두고 기사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개인사에 대한 토로가 많지 않았다. 머리 모양 때문에 모자를 써야 했다든지, 혼혈이라는 이유로 동경가요제 출전 기회를 놓쳤다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을지언정 신산(辛酸)했을 가족사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았다.

24일 실제 만난 그는 그 부분에 말을 많이 아꼈다. “힘들지 않았느냐” “어떻게 이겨냈느냐”는 질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어려운 일은 있지 않느냐”는 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너무 힘든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드러내봐야 쓸데없는 것이라는 오랜 감정훈련의 결과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자의 생각을 읽었는지 “사람들은 이미 나를 보면서 나의 삶이 무거우리라 상상하기 때문에 나까지 거기에 이야기를 얹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였을까, 희망을 갖고 운명을 개척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히트곡 ‘거위의 꿈’조차 부르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관객들이 ‘인순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나보다 먼저 울어버리는 게 싫었다. 그런 마음이 전해지면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요즘은 괜찮다. 안 울고 잘 부른다(웃음). 난 징징대는 거 딱 질색이다.”

―스스로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기보다 상황에 대한 인정을 잘한다. 일단 인정을 해야 무슨 일을 할지 떠오르는 것 아닌가. 오케이, 나는 얼굴색이 다르다. 근데 뭐 어쨌다는 건가. 피가 섞인 게 내 잘못인가. 어릴 때부터 운명에 끌려가느냐 개척할 것이냐 고민했다. 나중엔 남과 다르다는 것을 장점으로 생각하자는 마음까지 되었다. 일부러 튀지 않아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오히려 잘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분노 같은 것은 없었나.

“남을 미워하면 내가 힘들었다. 좀 차별받고 손해 보더라도 편하게 생각하는 게 우선 나를 위해 좋았다. 인생이란 게 슬플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거 아닌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

“엄청나게. 하지만 운이란 것도 실력이 준비됐을 때 낚아챌 수 있다. 1979년 ‘희자매’로 데뷔한 이후 한 번도 노래를 쉰 적이 없다. 1980년대 후반 방송에 안 나갔을 때에도 남들은 슬럼프라고 했지만 나이트클럽에서 열심히 불렀고 밴드도 운영했다. 버는 돈은 대부분 의상과 밴드 운영에 썼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다 터진 게(?) ‘열린 음악회’였다.”

그는 “아무도 내가 성공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라고도 했다.

―성공하고 싶었나.

“돈을 벌고 싶었다. 노래가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라 돈을 벌고 싶어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물론 노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늦사랑이 더 무섭다(웃음). 어쨌든 노래를 잘 부르면 돈을 많이 주니까 열심히 했다. 가진 게 많지 않았던 나로서는 노력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내 노래의 99%는 노력이다.”

―터질 듯한 고음(高音)도 노력의 결과물인가.

“그렇다. 노래로 도를 터보겠다는 생각으로 20대를 보냈다. 한계를 깨뜨리는 발성을 찾고 싶었다. 어떻게 얻은 가수라는 직업인데 순간의 일탈이나 게으름으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중졸(中卒)이다. 본래 포천여자종합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했으나 2007년 9월 포털 사이트 프로필과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포천 청산중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음이 알려졌다.

―학력위조 파문이 있었다.

“집안 사정 뻔한데 공부 더 하게 해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어떻든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 나왔다고 한 게 거짓이었으니 더 창피했다. 시부모 남편 딸 볼 면목이 없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지만 ‘안 갔는데 갔다고 한 게 잘못이지 안 간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검정고시를 볼까도 했지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관뒀다. 그 시간에 노래 연습을 더하자고 생각했다. 사실, 중학교 나와서 이만큼 성공했으니 박수를 받아야지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딸(16) 원정출산이 도마에 오른 적도 있다.

“아이를 가졌는데 누굴 닮아 나올지 두려웠다. 나는 잘 헤쳐 나오며 살아왔지만 이 아이는 과연 내가 겪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 설사 견뎌낸다 해도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민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국 가 낳은 거다. 외국인학교에라도 보내기 위해서였다. 떳떳하지 못한 일이란 거 알았지만 자식 문제이니 어쩔 수 없었다. 돌을 던지면 맞겠다는 심정이었다.”

―노래로 세상을 치유하고 싶다거나 희망을 주고 싶은가.

“그런 생각은 내겐 너무 크다. ‘거위의 꿈’도 우연한 기회에 한 거다. 뭔가를 억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그냥 열심히 살다가 상황이 되면 한다.”

그는 “걱정이나 후회도 잘 안 한다”고 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순간을 누리겠다는 생각에 바깥 풍경에 몰두하느라 차 안에서 자는 일도 별로 없다고 한다.

―도인(道人)의 경지처럼 보인다.

“너무 (나 자신을) 볶으면서 사는 거지.”

―편하게 살고 싶은가.

“그러고 싶다. 근데 잘 안 된다.”

―징크스가 있나.

“공연 앞두고 잠을 못 잔다. 어떤 땐 객석이 텅 비어있는 악몽도 꾼다. 너무 예민해져 목욕탕 수건, 신발장, 식탁 위 그릇까지 열을 맞춰 놓아야 맘이 놓인다. 처음 노래하는 순간 관객과의 기 싸움에 지면 공연 내내 진땀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이 드니까 관객이 더 무섭다.”

그의 태도는 시종일관 당당했고 말투는 끊어진다 싶을 정도로 똑 부러졌다. 오랜 시련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면서 살아온 사람들 특유의 결기도 느껴졌지만 학력 파문 후 그녀 스스로 말했듯 “마음속에 담아둔 것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 특유의 보호본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시간 반가량의 인터뷰를 마치자 어둠이 깊어진 저녁이었다. 카네기홀 공연으로 잠시 쉰 뮤지컬 ‘시카고’ 공연에 다시 서기 위해 연습실로 서둘러 향하는 그녀의 다부진 뒷모습을 보며 상처나 시련이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를 보여준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인순이선배 가장 존경
제 결혼식에 주례 요청”
후배가수 조관우

■ 동료들이 말하는 인순이

인순이는 여성으로는 이례적으로 다음 달 14일 가수 조관우(45)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는다. 조관우는 “음악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선배여서 주례를 부탁했다.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주례를 부탁하자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는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에 제한을 두는 일이 많은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후배 가수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인순이는 2008년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공연을 추진했지만 대관 심사에서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전문 공연장에 대중가수가 오르기 힘든 현실을 공론화했다.

그는 젊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선뜻 목소리를 빌려주곤 한다. 2004년 가수 조PD(34)의 노래 ‘친구여’에서 보컬 피처링을 하면서 젊은 팬들에게도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박진영, 마이티마우스 등 젊은 가수들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목소리를 빌려준다. 개런티는 받지 않는다.

조PD는 다음 달 9일 발매하는 새 앨범의 타이틀곡 ‘ROK’를 인순이와 듀엣으로 녹음했다. 그는 “인순이 누나는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언제나 완벽주의자처럼 노력한다”고 했다. 다른 가수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경우 대개는 스케줄이 바빠 무대에 함께 오르기 어렵다. 그러나 인순이는 조PD의 ‘친구여’에 참여할 때 스케줄을 조정해가며 모든 방송 무대에 함께 올랐다.

조PD는 “나도 아이가 있는데 인순이 누나는 바쁘게 일하면서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맞춘다. 여느 엄마들처럼 딸의 학업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성 고민까지 상담해준다”고 덧붙였다.

가수 하춘화(55)는 인순이보다 나이가 두 살 많지만 가요계에서는 17년 선배다. 하춘화는 “30여 년 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인순이는 대선배인 나를 어려워했고 나 역시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라 쉽게 친해지지 못했는데, 인순이가 4년 전 내 공연에 커다란 꽃을 들고 온 뒤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하춘화는 “인순이가 카네기홀에서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공연한 것은 정치인이나 외교관도 풀지 못한 숙제를 문화의 힘으로 해결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 ‘정말 장한 일을 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이제 귀국했으니 밥도 사줄 거예요.”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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