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오수영 씨, 11년 기다린 신장이식 수술로 ‘제2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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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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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에 꾹꾹 눌러 쓴 새해 소망 “가족여행”
“받은 만큼 봉사활동” 다짐

11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다가 새해 신장을 기증받아 새 삶을 시작하게 된 오수영 씨(오른쪽)가 신장이식에 앞서 6일 병실을 지키던 딸 박민희 양과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11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다가 새해 신장을 기증받아 새 삶을 시작하게 된 오수영 씨(오른쪽)가 신장이식에 앞서 6일 병실을 지키던 딸 박민희 양과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실 11년간 혈액투석을 받으러 병원을 오갈 때는 이런 날이 올 줄은 기대도 못 했어요.” 딸에게 수화(手話)로 수술을 받게 된 소감을 전하던 오수영 씨(43)의 눈가가 어느새 붉어졌다. 오 씨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신장을 기증받아 7일 이식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오 씨는 건강한 신장과 함께 첫날을 보냈다.

오 씨가 신장 이상을 발견하고 치료를 받은 건 11년 전부터.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다가 신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바로 혈액투석을 해야 할 만큼 신장 상태가 심각했다.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오 씨가 몸의 이상을 가족들에게도 표현하지 못한 탓이었다.

수술 하루 전인 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오 씨의 언니 오유영 씨(50)는 “동생이 몸이 자꾸 붓는다며 한의원에만 다녔는데 가족들이 미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아픈 상태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던 게 답답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 씨의 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신장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내 신장이랑 맞기만 하면 바로 주고 싶었죠.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아 평생 맘에 걸렸던 동생인걸요. 잘 맞을 줄 알고 검사를 받았는데 혈압이 높아서 저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11년간 병원을 오가며 힘들게 혈액투석을 받던 오수영 씨도 가족들도 어느덧 신청사실을 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말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연초에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으니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고 당장 동생을 찾아갔어요. 동생도 너무 좋은지 얼굴이 환해지더라고요.”

표현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기다려온 오수영 씨는 매주 월, 수, 금요일 병원을 오가며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기에 생활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늘 투석을 걱정해야 하고, 투석 받고 나면 또 몸이 지치니까 여행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죠.” 오 씨는 수화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른스러워 항상 이해해줬지만 미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대수술을 앞두고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표정의 오 씨에게 수술을 받게 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쪽지에 ‘꾹꾹’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가족여행.’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엄마를 간호하며 병실을 지키던 딸 박민희 양(14)의 얼굴에도 미소가 퍼졌다.

장애인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려운 형편에 이식수술을 받게 돼 아직 경제적인 부담도, 마음의 짐도 남아있지만 오 씨는 “건강해진 만큼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신장을 내어준 기증자를 향한 고마운 마음도 잊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만큼 저도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게요.” 후원 문의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02-363-2114(내선번호 4)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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