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인연’ 65년만에 극적 상봉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앞뒤 수감번호 두 유대인 추모일 앞두고 만나

“65년 전 내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당신 바로 앞에 서 있었다오! 내가 바로 B-14594라오.” 검버섯이 피고 힘줄이 튀어나온 팔에 검은색 글씨로 새겨진 ‘B-14595’를 본 순간 메나헴 숄로비츠 할아버지(80)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20일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일을 하루 앞두고 인터넷 덕택에 극적으로 상봉한 두 유대인의 이야기를 AP통신이 소개했다. 주인공은 숄로비츠 씨와 안셸 시에라츠키 씨(81). 두 사람은 ‘죽음의 캠프’로 불리던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에 같이 수감됐다. 도망치지 못하게 문신으로 번호를 새길 때 앞뒤로 줄을 섰던 ‘인연’이 있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 시에라츠키 씨는 “당시 우리는 살아남기에 바빠 앞에 누가 서 있는지 돌아볼 틈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스라엘로 돌아와 결혼 후 정착했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생존자들은 이름을 바꾸거나 그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시에라츠키 씨도 50년이 지난 1990년대 초가 돼서야 생존자 관련 단체를 찾아볼 용기를 냈다. “잊혀질 수 없는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계기는 숄로비츠 씨의 딸이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시에라츠키 씨의 사연을 보고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용소 안에서 빵 조각을 주워 먹고, 늙고 병든 사람을 골라내던 의사들의 선별 과정까지 너무 비슷했다. 19일 상봉장에는 두 명의 또 다른 생존자가 기쁨을 함께했다. 각각 수감번호 B-14596과 B-14597이었던 사울 자바츠키 씨와 그의 형 야코프 자바츠키 씨였다. 시에라츠키 씨는 “내가 보았던 것, 느꼈던 것을 그들도 느꼈으니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나 마찬가지”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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