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등급보류판정 받은 「거짓말」 장선우감독

  • 입력 1999년 7월 25일 18시 39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영화 ‘거짓말’의 장선우 감독. ‘경마장 가는 길’이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에 이르기까지 90년대 들어 만든 영화마다 격렬한 찬반논쟁에 휘말렸던 그가 이번엔 ‘거짓말’로 다시 논쟁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됐다.

‘거짓말’은 97년 음란물 제작혐의로 작가 장정일이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했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원작. 등급보류의 이유는 ‘정사의 상대가 미성년의 여고생인데다 변태적 성행위의 묘사가 지나쳐 사회질서를 문란케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등급보류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명백한 검열이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심의내용이 공개돼야 한다.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지만 절대로 ‘나쁜 영화’때처럼 자진 삭제같은 건 하지 않겠다.”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서 시비가 뻔히 예상되는 영화를 만든 이유는.

“처음에 영화사 신씨네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땐 안하려 했다. 그러다 왜 모든 게 획일화돼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르는 분별심을 버리고 다시 텍스트를 보니 슬프고 웃기고 공허한 사랑 이야기이더라. 연꽃은 진흙과 그리 멀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연꽃을 만드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원작을 감안하면 ‘지나친 묘사’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영화는 원작과 다르다. 극단적인 자기모멸 등 어렵고 지저분한 이야기는 다 뺐다. 원작의 노골적인 성묘사도 영화에서는 거리두기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편견과 인습의 틀에 갇힌 사람의 눈에는 지나친 대목들만 보이겠지만….”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은 김수용 감독. 84년 ‘허튼 소리’로 검열의 피해를 직접 겪고 항의의 뜻으로 8년간 영화연출을 중단했던 그가 이번에는 등급보류를 결정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김위원장은 “등급보류는 검열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영화등급분류 위원들의 말로는 ‘핵폭탄같은 위험한 영화’라는데 그런 걸 그냥 던지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거짓말’은 현재 베니스영화제 본선진출이 확정된 상태. 장감독은 “한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거짓말’을 내 영화 중 최고라고 평하기도 했다. 영화 시사회, 공청회같은 평가의 과정을 거쳐 그래도 ‘해롭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땐 개봉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위원장도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해 시사회를 갖겠다고 밝혀 ‘거짓말’은 개봉이전 공개적인 토론의 장에서 평가받는 첫 영화가 될 전망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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