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여사가 故이태영선생에 바치는 글]

  • 입력 1998년 12월 18일 18시 49분


선생님께서 떠나시고 남은 자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제 인생의 반려를 인도해 주신 분이셨으며, 어두운 시절 손을 마주잡아 주시던 분이셨습니다. 71년 대통령선거 당시엔 김대중 대통령후보를 위해 자택이 화재를 입는 우환에도 불구하고 이화여대 법대학장직을 사임하시면서까지 앞장서주셨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을 위해 오랜 세월동안 “이런 분을 대통령 못시키는 것은 우리 국민의 불행”이라며 지금의 대통령이 있기까지 온 정성을 다해주셨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1년전 그런 선생님이 간곡한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제가 말씀드렸지만 막상 선생님은 병상에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셨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떠나시고 나니,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그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부부를 위해 조언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 한자락 채 펴보이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 작은 응어리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평소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조용한 미소, 그 속에 담긴 용기와 결의는 한국 여성의 든든한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수세기 동안 내려 온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여성의 인권을 위해 선생님이 걷던 그 선각의 길엔 언제부터인가 파란 새싹이 돋아나 다가올 아름다운 꽃밭을 예감케 합니다. 힘없고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 흘리신 선생님의 눈물이 아름답게 빛나는 수정들로 남을 것입니다.

그 엄혹하던 때, 선생님은 억눌린 이들의 자유과 평화,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습니다. 80년 소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당시에 군사법정에서 호통치시던 그 당당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뜻을 좇아 선생님이 보듬어 주시던 그 가슴으로 낮은 자들을 위해 살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랬듯이 다시 일어서려는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지켜보아 주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 제가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속으로 되뇌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곧 한국 여성의 현대사가 되고, 나라 발전의 바탕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신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1998.12.18

이희호(김대중대통령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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