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언어 유희다. SOXL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일일 등락률을 3배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다. 미국 반도체 지수가 1% 오르면 SOXL은 그 세 배인 3%가 오른다. 지수가 떨어질 때도 세 배 하락하는 고수익 고위험 상품이다.
지난해 9월 2일 25.25달러(약 3만8380원)였던 SOXL은 2일(현지 시간) 미 뉴욕 증시에서 266.32달러(약 40만4806원)로 마쳤다. 불과 아홉 달 만에 10배 넘게 뛰었다. 전설적 투자자 피터 린치가 거론한 ‘텐배거(Tenbagger)’, 즉 주가가 10배 이상 오른 종목의 대표 격이다. SOXL을 보유한 각국 투자자는 단기간에 큰돈을 벌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하다.
같은 기간 SOXL을 구성하는 엔비디아, 마이크론, AMD, 인텔, 마벨 등 미 반도체 기업의 주가도 급등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한국 증시는 물론이고 일본, 대만 등에서도 반도체 기업 위주의 증시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인공지능(AI) 열풍과 깊은 관련이 있다. AI 연산을 최적화하고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특수 반도체 GPU, NPU, HBM 등을 생산하는 기업은 물론 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을 맺은 업체의 주가가 계속 빠르게 오르는 분위기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재의 AI 열풍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고 경고한다. 급격한 상승은 필연적으로 조정을 부르고 고유가, 세계 곳곳의 전쟁과 분쟁 등으로 기업 경영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데도 ‘AI’ 두 글자에만 기대 각국 증시가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공매도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명 투자자 마이클 버리,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폴 존스 등이 특히 우려한다.
약 26, 27년 전에도 유사한 모습이 나타났다. 매출도 수익도 사실상 ‘0’인 기업들이 회사 이름에 ‘닷컴(.com)’만 붙이고 큰 주목을 받았다. 투자 자금이 넘쳐났고 밥 먹듯 기업공개(IPO)가 이뤄졌다. 다만 산이 높으니 골도 깊었다. 2000년 3월 5,000을 넘겼던 기술주 위주의 미 나스닥 지수는 2년 만에 1,100까지 추락했다. 그 기간 동안 5조 달러(약 7600조 원)가 증발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닷컴 버블은 주로 스타트업이 이끌었지만 현재의 AI 열풍은 시가총액 수조 달러를 넘나드는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하고 있다. 또 닷컴 버블 당시의 기술은 구체적인 혁신이라기보다 인터넷 트래픽과 사용자 수 증가가 고작이었지만 현재의 AI 기술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역대급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 또한 사반세기 전과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대표적이다. 양극화 해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과제였지만, 민간 기업의 성과급 지급에 ‘사회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자체가 양극화 심화의 단면이자 AI 열풍의 후폭풍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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