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우리가 잘 모르는 존재라는 점이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누군지 아는 건 상식 문제, 우리 동네 광역·기초의회 의원 이름을 알고 있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학교 수업을 빼먹기 일쑤인 운동부도 ‘일반 학생’이 알기 힘든 존재다. 운동부끼리도 그렇다. ‘피겨 프린스’ 차준환과 프로야구 LG 투수 이민호는 서울 휘문고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말을 해본 건 졸업 후 3년이 지나 차준환이 LG 경기에 시구하러 갔을 때다. 차준환은 이민호와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았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선거철이 아니면 우리 동네 지방의원 얼굴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그것도 그나마 유권자가 관심이 있을 때다. 후보 이름도 모른 채 정당 이름만 보고 표를 던지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몇몇 운동부 역시 ‘우리는 체육인’이라는 폐쇄적 정체성으로 똘똘 뭉쳐 있다. 외부에서 각종 폐해를 지적하면 거의 예외 없이 ‘일부의 문제’라는 대답이 나오는 이유다.
세 번째는 상당수가 호의를 권리인 줄 안다는 점이다. 지방의원이 각종 특혜를 당연한 듯 누리다 문제가 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일부 학교 운동부 역시 ‘학교생활’을 하지 않는 걸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한다. 운동선수로 크게 성공하는 건 상위 1%도 되지 않는데도 모든 운동선수가 운동에 다걸기하는 제도를 만들려 한다.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출석한 걸로 인정받는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를 늘려 달라거나 ‘최저학력제’를 폐지해 달라고 요구하곤 한다.
“차라리 없애는 게 낫겠다”는 비판에 자주 시달리는 것도 지방의회 의원과 운동부의 공통점이다. 이런 비판에 맞서는 논리도 비슷하다. 지방의회를 폐지하면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이 훼손되고 일선 학교 운동부를 폐지하면 ‘엘리트 스포츠’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몰라도 다른 나라는 운동부 없이도 엘리트 스포츠를 잘만 육성하고 있으니 이 주장이 꼭 맞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지방의회와 운동부 모두 ‘문을 여는 것’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방의원이 평상시에도 주민과 접점을 늘려나가야 하듯 운동부도 문을 열고 ‘바깥세상’과 소통하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학생 선수의 하루 24시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욕심이 아니라면 다른 모든 학교생활을 뒤로하고 운동만 해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렇게 운동에만 매달리는데 ‘부카쓰(部活·동아리 활동)’ 중심으로 학교 체육이 돌아가는 일본에 구기 종목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목에서 뒤진 건 체육인 사이에서는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한국에서도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 양궁 역사상 최초로 ‘중학생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은 강연서는 현재 재학 중인 부명중학교가 아니라 지역 스포츠 클럽 ‘부천 G-스포츠’ 소속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운동부가 아닌 클럽에서 시작한 취미 활동을 통해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대부분의 운동 선진국에서 엘리트 선수는 클럽 활동으로 시작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다. 운동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학교생활도 병행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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