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지난 주말, 태블릿PC로 영화를 봤다. 기대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않아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결국 10초씩 건너뛰기 시작했고, 급기야 재생 속도를 1.5배속으로 올리기도 했다. 영화 한 편을 1시간 만에 ‘해치운’ 뒤에는 왠지 모를 허무함이 밀려왔다. 줄거리 정보는 머릿속에 남았지만, 감동이나 여운은 화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져 버린 기분이었다.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커다란 스크린, 편안한 좌석, 훌륭한 사운드 등 많은 이유가 있지만, 요즘 세태에는 정속(定速) 주행이 강제된다는 점이 크다. 상영관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히면 아이러니하게도 해방감을 느낀다. 언제든 멈추거나 건너뛸 수 있다는 ‘조급한 자유’로부터 격리되어 2시간 동안은 선택권 없이 오직 하나의 세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영화관의 위기를 논할 때 흔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범람이나 높은 티켓 가격을 먼저 꼽지만,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추구하는 흐름 탓도 크다. 유튜브 쇼츠는 1분을 넘기지 않고, 드라마는 10분짜리 요약본으로 소비되며, 책은 ‘3분 핵심 정리’로 대체된다.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단위로 쪼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듯 ‘처리’한다. 이렇게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수집하는 ‘배속’의 시대에 2시간 동안 스크린 앞에 묶여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리스크인 셈이다.
다만 시간을 아끼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 아낀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는 모르는 듯하다. 효율을 극대화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극심한 시간 허기에 시달린다. 1시간짜리 영상을 20분 만에 해치우고 남은 40분 동안 또 다른 자극을 찾아 헤매는 ‘도파민의 굴레’. 결국 시간을 아낀 것이 아니라 밀도를 희석한 것이 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중요한 가치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맥락은 결코 배속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감독이 공들여 배치한 롱테이크, 주인공의 떨리는 숨소리, 요약본에서는 가장 먼저 잘려 나갈 대사 사이의 빈 공간들. 이 비효율적인 순간들이 쌓여야만 비로소 한 세계의 질감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거칠고 투박하며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그 과정들이 생략된 채 결과물만 섭취하는 것은 영양제만 먹으며 식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메뉴를 고르는 즐거움, 재료의 맛과 식감, 함께 나누는 대화가 배제된 영양제는 생존을 도울지는 몰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못한다. 효율이라는 잣대로 삶을 재단하다 보면, 정작 삶을 충만하게 하는 발견이나 사유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세상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요약된 정보의 양이 아니라, 흐릿하고 지루한 과정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쌓인 감각이다. 인생은 결코 ‘결말 포함’이라는 제목의 요약본으로 치환될 수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라, 영화 ‘화양연화’ 속 좁은 복도를 스쳐 지나가던 두 사람의 망설이는 어깨와 그 사이를 채운 자욱한 연기 같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영화도, 삶도, 건너뛰기에는 아까운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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