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에도 온기를 전하는 사람[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도배사가 되기 전 상상했던 도배는 적막하게 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벽지를 붙이는 일이었다. 오로지 벽과 나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내가 움직이는 소리만 들으며 외로이 이어가는 작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도배사가 이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물론이고 전기나 목공, 타일 같은 다른 공정의 작업자들, 또 내게 일을 의뢰하는 인테리어 업체의 대표나 직원 등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요즘은 주로 이사 들어가기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집의 도배를 하기 때문에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일은 드문 편이다. 그래서 애프터서비스(AS)를 위해 방문하게 될 경우 누군가 이미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 조금 낯설다.

아무런 살림살이가 없는 상태에서 도배를 마치고 마감을 했는데, 살림살이와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새롭다. 내가 열심히 마음을 담아 도배한 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생각하며 슬쩍 둘러보게 된다. 젊은 청년이 혼자 조용히 사는 집, 부부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집, 아이가 다섯 명이나 있어 대식구가 복닥복닥 살고 있는 집, 노부부가 사는 집 등 다양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는데, 집의 모습도 각각 다르다. 아무런 장식이나 짐 없이 단출한 집, 취향을 담은 소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집,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짐이 꽉 차 있는 집도 있다.

집의 형태나 꾸밈이 각기 다른 것처럼, 현관문을 들어서는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의 태도도 다 다르다. 고생이 많다며 고마워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을 포함한 온 가족이 도배사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며 신기해하는 일도 있다. 때로는 귀여운 강아지가 반겨줄 때도 있지만, 이유 없이 차갑고 쌀쌀맞게 대하는 고객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을 만나 대화하고 그 집에 머무르며 AS 작업을 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집과 사람의 분위기, 성향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일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흥미롭다. 도배사로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내가 아니라, 집주인 혹은 소비자인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듯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나는 어떤 표정과 태도로 나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을까,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은 나와 집에 대해 어떤 분위기를 느낄까, 내가 타인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내 행동과 표정에도 묻어나겠지.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일이라는 기대로 시작했고, 그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당황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불가피하게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도배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나아가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어떤 분위기를 풍기는지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 본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은 짧은 만남에서도 차갑고 쌀쌀맞게 느껴지는 사람이기보다는, 잠깐이라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도배사#인테리어#고객만남#애프터서비스#집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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