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관석]한덕수의 ‘선택적 망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6일 23시 21분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줄곧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신의 행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계엄 선포 직후 용산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한 전 총리가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16분간 대화하는 장면이 24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스크린에 떴다. 이를 두고도 한 전 총리는 ‘대화를 나눈 사실을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국정 2인자의 기억에서 비상계엄 직후 16분이 통째로 지워진 셈이다.

▷폐쇄회로(CC)TV가 조작된 것은 아니다. 한 전 총리가 문건을 손에 들고 움직이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도 한 전 총리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한다. 재판에서 보인 그의 입장을 따져보면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내 모습이 CCTV에 보이고 있다’는 관찰자 시점이다. 자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결심을 듣는 순간 정신이 무너지는 ‘멘붕(멘털 붕괴) 상태’였다는 것이다. 발신자 표시가 ‘윤석열입니다’였다는 윤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대통령실로 향한 경위는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해당 문건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들고나온 것이다. 한 전 총리는 특검 조사 때 계엄 포고령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는데, 법정에 나와서는 다시 기억이 흐릿해졌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참모가 자기 문건도 아닌 서류를 들고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추궁에도 ‘사후적으로 보면 제가 영상에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는 어정쩡한 답변을 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손가락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장면이 국무회의 정족수를 세는 모습이라는 특검 주장에도 ‘눈은 뜨고 있었지만 무엇을 봤는지 분간이 안 됐다’고 한다. 황당할 정도로 선택적인 기억력이다.

▷기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상계엄이 경제와 대외 신인도를 망칠 것 같아 재고를 요청했다는 주장,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에게 대통령을 말려 달라고 귀띔했다는 대목은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정작 군이 국회에 투입되는 상황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답을 흐렸다.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뒤에도 국무회의 소집을 서두르지 않았다. 재판장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물은 이유일 것이다.

▷특검은 26일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올해 76세인 한 전 총리에게는 최악의 경우 남은 인생의 상당 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무거운 구형량이다. 특검은 중형을 구형한 이유로 “비상계엄을 말릴 수 있는 ‘키맨’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 의무를 저버리고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을 들었다. 한 전 총리는 혼자 막을 도리가 없었고, 절벽에서 땅이 끊어진 것처럼 기억은 맥락도 없고 분명치도 않다고 했다. 하지만 ‘멘붕’이라는 말로 계엄의 밤을 지우기엔 CCTV에 남은 행적이 너무 또렷하다.

#한덕수#내란 방조#비상계엄#대통령실#CCTV 영상#기억 상실#특검#징역 구형#국무회의#윤석열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