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로켓에 올라타려고… 소프트웨어社 정체성도 버렸다[최중혁의 월가를 흔드는 기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5일 23시 06분


비트코인 최다 보유社 ‘스트래티지’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우리의 최종 목표는 비트코인 ‘리딩 뱅크’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그간 비트코인이란 로켓에 올라타겠다며 저마다 다양한 비즈니스 전략을 밝혔지만 이 기업만큼 진심인 곳은 없다.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심지어 기업의 정체성을 ‘비트코인 축적 회사(Bitcoin Development Company)’로 정의한 이 회사, 바로 ‘스트래티지(Strategy)’다.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이 10만 달러(약 1억4200만 원)를 넘어서는 등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월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소프트웨어 기업? 비트코인 투자사?

1989년 설립된 스트래티지는 본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기반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산업의 고객들에게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를 제공해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2020년 비트코인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회사의 방향성이 크게 변했다.

스트래티지의 공동 창업자이자 의장인 마이클 세일러는 비트코인 매입을 회사의 최우선 비즈니스로 삼았다. 기존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비트코인 취득에 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뿐 아니라 유상증자와 전환사채를 통해 비트코인을 사모았다. 전환사채는 기업이 일정 조건에 따라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대신 일반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사명도 올해 2월 마이크로스트래티지에서 스트래티지로 바꾸고 회사 로고에 비트코인 이미지를 넣었다. 세일러 의장은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 애널리스트인 가우탐 추가니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리딩 뱅크’라는 목표를 포함해 비트코인 관련 사업의 확장을 회사의 주요 성장 전략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3월 31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8-K 보고서’(Form 8-K·기업에 중요한 사건이나 변화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공시하는 문서)에서 밝힌 비트코인 보유 개수는 52만8185개로, 447억 달러 수준이다. 이는 일반 기업 중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비트코인을 보유한 비트코인 채굴 기업 ‘마라톤디지털홀딩스’의 10배를 넘는다.

비트코인보다 더 오른 주가

스트래티지의 반전은 지난해 일어났다. 2023년 개당 4만 달러에 머물던 비트코인 가격이 고점 기준으로 10만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덩달아 이 회사를 바라보던 월가의 시선도 바뀌었다. 스트래티지의 주가는 2020년 비트코인 매수 전략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연평균 1.4% 상승하는 데 그쳤다. 그러던 주가가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다섯 배 넘게 올랐다.

주가가 크게 상승한 덕분에 미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지수에 속해 있던 스트래티지는 미 나스닥의 대형 기술주 100개 중심의 나스닥100 지수에 편입됐다. 스트래티지가 주요 지수에 포함되자 비트코인 직접 투자에 법적·사회적 제약이 있는 기관투자가들은 비트코인의 대체재로 이 회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스트래티지의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과 연동되면서도 그 상승 폭보다 더 높은 상승률을 보인다.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스트래티지를 선호하는 이유다. 전철희 미 펜실베이니아 커먼웰스주립대 재무학과 교수는 “지난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이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트코인 가격이 10% 변동할 때 스트래티지 주가는 평균적으로 16.7∼21% 변동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 오른 3가지 이유


지난해 비트코인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난해 1월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공식 승인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미 금융시장에서 비트코인이 공식적인 디지털 자산으로 인정받은 것을 의미한다. 이후 미 연기금 및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비트코인 관련 ETF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에 상장된 해당 ETF들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4월 10일 기준 130만 개로, 그 가치는 1100억 달러에 달한다.

둘째, 비트코인의 특징 중 하나인 ‘4년마다 신규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들 수 있다. 2008년 첫 채굴 당시 10분당 50개였던 채굴량은 2012년 25개, 2016년 12.5개, 2020년 6.25개로 줄었고 지난해 4월 이후에는 3.125개로 감소했다. 이러한 반감기는 총 2100만 개의 비트코인이 모두 채굴될 것으로 예상되는 2140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암호화폐에 대한 미 정치권의 인식 변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 전인 지난해 7월 비트코인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비트코인은 미국의 금융 주권을 강화하는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SEC 위원장에 친(親)암호화폐 성향의 폴 앳킨스 전 SEC 위원을 지명하고, 가상화폐를 전략 비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재무지표 개선 기대-과세는 부담

올 들어 스트래티지에 가장 큰 변화는 미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의 새 회계 규정(ASU 2023-08)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이 규정에 따라 기업들은 비트코인을 더 이상 무형자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시장가격 변동을 즉각적으로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그간 기업들은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면 손해분을 재무제표에 즉시 반영해야 했지만, 상승할 땐 무형자산으로 취급해 이를 반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 규정을 적용하면 스트래티지는 보유한 비트코인의 실제 시장가치를 반영해 장부상 자본이 늘어나는 등 재무제표 지표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는 “자본 증가에 따른 부채 비율 하락으로 추가 전환사채 발행에 부담을 덜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해 스트래티지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조항으로 인해 수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도입한 기업 대체 최저세(CAMT)로 인해 조정된 재무제표 소득이 3년간 10억 달러를 초과할 경우 해당 소득의 15%를 세금으로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래티지는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으로 막대한 장부상 이익이 기대되지만, 이로 인한 세금 부담은 현금 비용으로 지출해야 해서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변동하면 회사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전환사채로 조달한 돈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하면 비트코인 가격 상승 시엔 큰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급락할 경우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낮은 가격에 매각해 부채를 상환해야 할 수 있다. 게다가 주가가 전환가격 이하로 유지되면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고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현금 흐름에 부담을 주며, 추가 자금 조달 가능성 또한 높일 수 있다. 스트래티지가 지금까지 구매한 비트코인의 평균 단가는 6만6384달러다.

비트코인이라는 고위험 자산에 기업 정체성을 걸고 전례 없는 승부수를 띄운 스트래티지의 행보는 기존 금융 질서에 도전하는 하나의 실험이자 상징이다. 물론 그 여정은 높은 변동성과 규제 불확실성, 과세 부담 등 만만치 않은 장애물을 동반한다. 그러나 ETF 승인, 회계기준 개정, 정치권의 인식 변화 등 제도적 기반이 하나둘 마련되면서 스트래티지가 내세운 ‘비트코인 리딩 뱅크’라는 비전은 결코 허황된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로켓은 이미 발사됐다. 이제 궤도 진입에 성공할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필자(최중혁)는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삼성SDI America, SK Global Development Advisors 등을 거쳐 미 실리콘밸리 소재의 사모펀드 팔로알토캐피탈(Palo Alto Capital)을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트렌드를 알면 지금 사야 할 미국 주식이 보인다’ ‘2025-2027 앞으로 3년 미국 주식 트렌드’ 등의 저자다.

#비트코인 로켓#리딩 뱅크#암호화폐#스트래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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