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을 사직해도 의사 면허를 갖고 일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대안 없이 버티다가 제적되면 의대생 지위를 잃는다. 누가 책임져줄 것도 아니지 않나. 1년이나 투쟁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전국 40개 대부분의 의대가 동맹 휴학 중인 의대생들의 복귀 시한을 31일까지로 잡고 있는 가운데 제적 위기에 처한 한 의대생이 커뮤니티에 남긴 글의 일부다. 실제로 1년 넘게 동맹휴학을 이어오던 전국 의대생들의 ‘단일대오’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21일까지 복귀 신청을 받은 고려대와 연세대 의대는 재적생 절반가량이 복학원을 제출했다. 연세대 의대의 경우 지난해 입학하자마자 동맹휴학에 들어간 24학번 복귀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강경했던 의대생 움직임에 ‘복귀’라는 변화가 생긴 건 ‘이달 말까지 미복귀 시 제적’ 카드를 꺼낸 정부와 각 대학의 강경한 입장 영향이 컸다. 전국 40개 의대 중 35개 대학이 정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1년 넘게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학생 휴학계를 21일까지 반려 처리했다. 대부분 의대가 31일까지 1학기 등록 및 복학 신청을 마감한다. 고려대와 연세대, 차의과대는 미등록 의대생에게 24일 제적 예정 통보서를 발송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대가 복귀 시한을 이번 주 내로 잡았다. 아직도 많은 의대생들이 ‘제적’이 걸린 복귀 이슈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복귀를 꺼리는 이유로는 ‘배신자 낙인’이 찍히는 걸 우려하는 측면이 크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계 내부에서도 ‘후배 미래를 망치는 무책임한 투쟁을 멈추고, 의대생들이 복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 강경파로 꼽히는 이동욱 대한의사협회 경기도의사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4일 의사 수백 명이 모인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서 “(유급과 제적 등) 위기에 처한 의대생을 도와줄 계획이 없다면 앞길이 창창한 의대생들은 (수업 거부를)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다”라며 “의대생들에게 더 이상 기대지 말자”고 호소했다.
맞는 말이다. 사직 후 재취업이 가능한 전공의들과 달리 의대생들은 의사 면허가 없다. 대학에서 제적되면 재입학도 쉽지 않다. 선배 의사들은 어린 후배들의 미래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제적 위기에 몰린 의대생들에게 투쟁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의대생들 역시 현실을 자각하고 선배 의사들에게 대정부 투쟁을 맡겨야 한다.
“선배가 후배를 보호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다음 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지금 가장 피해를 본 이는 의대생이다. 비록 미완의 단계라 할지라도 학업의 전당으로 복귀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21일 고려대 의대 교수들이 낸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의 일부다. 현 사태를 제대로 평가한 것은 물론이고, 의대생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스승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라 생각한다. 학생이 학교로 복귀하는 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대생의 목소리도 학교 밖이 아닌 학교 안에서 학생의 본분을 다할 때 더 힘이 실린다. 선배 의사들도 후배 의대생들이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 대규모 유급 제적 사태를 막는 것이 미래 의료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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