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등짐 펌프 하나 메고”… 산불에 스러진 60대 진화대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4일 23시 18분


22일 정오경 경남 산청군 구곡산 산불 현장에서 불을 끄던 진화대원 8명과 공무원 1명이 다급하게 산길을 뛰기 시작했다. 도깨비불처럼 불덩이가 날아다니더니 불길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 불덩이가 강풍을 타고 주불과 400m 떨어진 곳까지 날아들었고 역풍이 불며 순식간에 이들의 뒤를 덮쳤다. 움푹 팬 웅덩이로 피신한 5명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엎드려 불길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진화복을 입었는데도 온몸이 타들어 갔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남았다. 화마를 피하지 못한 진화대원 3명과 공무원 1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산불이 나면 산림청 공중진화대와 특수진화대가 주불을 끄고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진화대원이 잔불을 잡는 식으로 진화 작업이 진행된다. 이번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 8명은 모두 60대였다. 창녕군 소속이지만 ‘산불 대응 3단계’ 발령에 따라 산청군까지 지원을 나섰다. 산길을 안내한 산청군 녹지직 공무원만 30대였다. 지자체 소속 진화대원은 보통 10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다. 평소 농사를 짓다가 농한기에 일당 8만 원 정도를 받고 진화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화조장이었던 고 이모 씨(64)는 홀어머니를 수발하며 농사를 지었다. 동네 어르신을 병원이며 읍내며 차에 태워 나르던 ‘동네 효자’였다. 고 공모 씨(60) 또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당일 아침까지 이웃 마늘밭에 물을 대주고 나올 정도로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고 황모 씨(63)는 지난해 일을 시작한 새내기였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됐다.

▷전국 진화대원 9604명 중 70%가 60대 이상이고 70, 80대도 종종 있다고 한다. 만 18세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지만 지역에 워낙 청년이 없기도 하고 처우도 열악해 사실상 고령자 일자리가 됐다. 선발 이후 받는 교육 역시 이틀 이내로 짧게 이뤄지고, 산림청 특수진화대원과 달리 갈퀴와 등짐 펌프 등 화재 진압 장비도 간소하게 지급된다. 문제는 겨울철 이상 고온과 봄철 가뭄으로 인해 산불이 잦아지고,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불 진화 자원을 총동원해도 불길이 빨리 잡히지 않으니 진화대원까지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주말 전국 42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축구장 1만2475개(8733ha)만큼의 면적을 태울 만큼 맹렬하고 난폭했다. 강풍을 타고 불이 자꾸 번지면서 사흘간 진화율은 71%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고령의 진화대원을 변변한 장비도 주지 않은 채 헬기를 띄워도 접근이 어려운 대형 산불 진압에 투입했다. “마지막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남은 가족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산불#진화대원#고령자#화재 진압#진화 작업#대형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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