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관한 칼럼을 여러 건 썼다.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의 기업관(觀)은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라서, 마치 직업병처럼 그의 발언에 일일이 귀 기울인 결과다. 그동안 관찰해 온 이 대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는 배트맨이나 카멜레온 같았다. 평소엔 “그럼 그렇지” 하다가도 어느 날은 “진짜 달라졌나” 하는 호기심을 주면서 사람들을 계속 헷갈리게 한다. 이 대표의 그런 변화무쌍한 모습 자체에 그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본다.
통제와 개입으로 혁신기업 만든다는 발상
계엄과 탄핵 때문에 요즘 갑자기 헌법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지듯, 필자는 이 대표 덕분에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새삼 다시 곱씹어 보고 있다. 그가 던진 말에는 전통 주류 경제·경영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생소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이나 반도체법에 대한 고집은 강성 지지층에 등 돌리지 못하는 그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K엔비디아 발언’은 이 대표가 기업을 평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너무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 느낌이라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위장과 표변의 대명사인 그가 자신도 모르게 허연 맨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 대표는 엔비디아 같은 기업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그런 기업이 생기면 그 과실을 국민과 나누겠다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만으로도 이 대표가 구상하는 ‘혁신기업의 레시피’를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국민이 공동으로 투자해 대표기업을 육성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이익을 나눈다는 발상에는 기업가 정신의 모태인 자율 경영과 성과 보상의 원칙이 살아 숨 쉴 공간이 없다. 그보다는 통제와 개입, 이익 환수처럼 혁신의 씨앗을 말려 죽이는 독소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엔비디아 같은 기업은 기업가의 창의와 야수 같은 열정, 우수한 인재, 활발한 벤처 생태계 등 모든 조건이 한데 어우러져야 겨우 하나 생길까 말까 한다. 이 대표가 들고 있는 재료로 혁신기업을 빚어내겠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기적의 요리법’에 가깝다.
이 대표는 요즘 대기업 총수나 금융계, 경제 단체, 글로벌 석학 등으로 만남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또 기회 될 때마다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 “민주당은 원래 경제 중심 정당” 같은 말을 쏟아내고, 이는 ‘친기업 행보’ ‘중도층 잡기’라는 제목이 달려 언론에 소개된다. 그러나 이 대표 본인이 바라는 ‘우클릭’은 딱 거기까지다. 실제로는 반도체 연구개발직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무 예외’를 적용해 글로벌 경쟁의 족쇄를 풀어주는 데 반대하고, 모든 기업들이 우려하는 상법 개정을 강행해 기업가의 선제적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애초에 기득권과 이익단체 눈치를 보며 미래 산업을 짓밟는 규제를 잔뜩 양산한 것도 전 정부의 여당인 민주당이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되레 악화시킬 우려
이 대표는 좌우를 오가는 오락가락 발언 와중에 종종 호언장담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최근 “민주당이 집권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코스피가 3,000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바람대로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져 국민들이 투자 수익도 챙기고 세금에서 해방되는 만화 같은 세상이 오면 코스피는 3,000이 아니라 그 이상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본모습이 집권 후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각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 야당 대표가 이런저런 정책 이슈를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공론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향을 손질하고 또 일관성도 조금 갖췄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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