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건축가가 지은 집’이란 책을 냈다. 건축가에게 의뢰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언뜻 보면 좋은 집과 그 안에서 호사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마침내 결단을 한 사람들의 용기였다. 예산을 포함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 가까이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하는 이유는 집에 더 큰 마음을 주고, 나의 일상과 현재를 깊이 의탁하기 때문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북토크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근사하고 매력적인 집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힘주어 말하는 것은 주인의 ‘색’과 삶의 태도다. 이때 집의 외관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다. 외관만 보고 ‘여긴 내 스타일이 아니군’ 했다가 인테리어와 살림을 보고 금세 마음이 뒤집혀 긴 취재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집에는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집주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단박에 보이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썼음이 분명한 세월이 여러 겹의 레이어로 풍성하게 드러난다는 것.
전혜선 요리연구가 댁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었는데, 감자처럼 푸근한 얼굴의 강원반을 포함해 소반과 채, 소쿠리가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윤형근 화백과 이강소 화백의 초기작이 오래된 친구처럼 곱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음식을 포함해 일상도 결국 ‘미술’이기에 식탁 너머와 연결된 예술적 기운이 아름답게 와닿았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하우스씨’의 집도 기억에 남는다. 이 집은 대로변에 있는데 창문 밖으로 은행나무가 숲속인 양 가깝게 보인다. 봄에는 녹색, 가을에는 노란색이 커다란 덩어리로 쏟아질 듯 가깝게 펼쳐진다. 창문 안쪽으로 있는 진열장 위에는 유리새를 포함해 시간이 날 때마다 부부가 한 점씩 사 모은 공예품이 가득하다. 식물도 넘치도록 많고 목공을 배우며 직접 만든 수납장과 선반에도 기꺼이 자리를 내주는 중이다.
이 부부가 살림살이를 구매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마음에 쏙 드는 걸로만 한 점씩.’ 대충 마음에 드는 걸로 급하게 산 물건은 없다. 때로 큰돈을 쓰고, 때로 프랑스에 가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때로 이태원 빈티지 마켓에서 운명처럼 만난 살림들이기에 이 부부는 각각의 물건을 구입하게 된 경위와 에피소드, 만든 이의 이름을 다 기억한다.
흔히 “남의 집 구경이 제일 재밌다”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그 집에 주인의 색과 생각, 일상을 단장하는 어떤 마음이 생생하게 흐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주인의 고유한 색깔과 삶의 기쁨이 잡히지 않는 집은 맹숭맹숭 싱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덧붙이는 말은 이런 뉘앙스의 것들이다. “한날한시에 산 것 같은 물건들로 ‘간단하게’ 채워진 집은 역시 매력도 얇더라고요.” 고 이어령 선생은 “이야기 속에 살아라. 그것이 럭셔리한 인생이다”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에는 내 곁에 있는 물건들과의 내밀한 접속도 포함된다. 그 물건이 굳이 비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가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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