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대한민국 경찰에게 악몽이었다. 경찰서에 보관 중이던 압수물 현금을 경찰관이 횡령하고, 지방선 순찰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여성이 36시간 갇혀 있다 숨졌다. 업무 과중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중 경찰 자살도 잇달았다. 밖에서는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비판이, 안에서는 “더는 못 해먹겠다”는 자조가 만연했다. 설상가상 12·3 불법 비상계엄 사건이 터졌고 경찰 넘버 원투가 동시에 구속됐다. 경찰의 위기였다.
변곡점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이었다. 관저에서 버티던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을 2025년 1월 15일 경찰이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신병 확보였다. 경찰은 미리 대통령경호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안에서부터 붕괴시켰고, 체포 당일 경호처 누구도 경찰을 막아서지 못했다. 국민 여론, 시민사회가 경찰을 응원했다. 심지어 경찰과 대척점에 서 있는 노동계도 그랬다. 2023년 고공 농성 중 경찰에 강제 진압된 김준영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처장(현 금속노련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살다 살다 경찰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볼 줄이야”라고 썼다. 경찰은 법 집행 능력을 온 국민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계엄 수사가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부족함도 드러났다. ‘내란죄 수사권 논란’이다. 사실 이는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에는 내란죄가 없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역시 대통령을 수사할 수는 있지만 내란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질렀다. 누가 수사할 수 있는가’를 객관식으로 내면 ①경찰 ②검찰 ③공수처 중 정답은 이견 없이 1번이다.
검찰과 공수처가 ‘관련성 있는 범죄’라며 대통령 내란죄를 수사하겠다고 주장했고,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가 맡았지만 사실 논리는 빈약하다. 마약범이 마약 운반 도중 교통사고를 냈는데 경찰서 교통조사계가 “관련성 있는 범죄”라며 마약 수사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경찰 스스로도 대통령 수사를 공수처에 넘긴 사정이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수사 역량 부족이다. 검찰총장 출신 ‘법꾸라지’ 대통령을 상대로 허술한 수사 결과를 공판검사에게 넘겼다가는 재판에서 자칫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경찰의 급선무는 검찰, 공수처에 비견될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앞에 앉혀 놓고 신문할 수 있는 엘리트가 경찰에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열악한 처우와 보수 탓에 경력 변호사 지원율은 갈수록 떨어진다. 2022년 1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출범시킬 때 참고한 것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모델이다. FBI에는 정보 전술 분석가, 정보기술(IT) 전문가, 법의학자, 회계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자, 변호사 등 3000명이 넘는 고급 인력이 포진해 있다. 정부와 국회가 ‘한국판 FBI’를 만들겠다며 경찰에 국가수사본부 간판을 달게 했으면 그만큼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사건이 있을 때만 국회의원들이 떼로 몰려와 “경찰만 믿는다”며 달콤한 말을 늘어놓고 가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고급 두뇌, 소프트웨어를 기를 예산과 입법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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