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이야기는 실화일까? 자명고라는 신비한 물건은 없더라도 적국의 왕자나 장수와 사랑에 빠져 성문을 열어주거나, 경보 장치를 해제했던 실제 사건에 기반해서 이 전설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상을 즐긴다. 사실이라 믿고 증거를 애타게 찾는 사람도 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전설 중 하나가 아서왕의 전설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아서의 무덤을 발굴해서 그가 고대 켈트족 지도자였고, 마법사 멀린은 그의 샤먼이며, 검(劍) 엑스칼리버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새 강철 제조법으로 제작한 신형 검이었음을 알아낸다 해도 역사에 공헌하는 바는 기대 이하일 수 있다. 그의 왕국은 전설보다는 훨씬 작을 것이고, 그 시대의 고민과 국가 성립 과정은 역사가들에 의해 이미 밝혀져 있다. 물론 역사가 문학이 되는 과정 등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감흥과 영감을 주긴 하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픽션이 분명한 내용임에도 교훈이 되는 내용이 있다. 성배 찾기다. 성배를 찾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환상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사가 죽었고, 아서왕의 왕국도 무너진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대임에도 성배 찾기라는 숭고한 도전이 파멸의 원인으로 그려지는 자체가 신기하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별 어려움 없이 이해가 간다. 단순한 사실에 집착하고, 그것만 해결되면 세상만사가, 아니 내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고 열중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 믿음은 곧 반대파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지도자들은 이런 현상을 즐기거나 부추기면서 되레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다. 성배에 담긴 포도주가 우리의 피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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