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생겼다.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 배우 최화정은 63세에 유튜브에 도전해 석 달 만에 구독자 수 60만을 달성했다. 그의 채널을 보고 있으면 전에 없던 힐링을 느낀다. 통상의 비우고 거리 두는 종류의 위안이 아니라 채우고 다가서고 싶은 에너지랄까. 우선 건강하게 요리해 먹는다. 평소 쓰는 식재료와 도구로 간단하게 뚝딱 상을 차려 내는데, 건강할 뿐 아니라 멋스럽고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더불어 직접 고른 물건을 아낀다. 집 안 곳곳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고급스러운 디자이너 제품만큼 수십 년 된 살림살이를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은 PD가 그의 가방을 보고 “비쌀 것 같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명품이 아닌 4만 원대 가방이었다. “파티 때 다 이것만 들었어. 나 이거 ‘디올’이었어도 샀어.” 스스로의 취향과 안목에 대한 자신과 그 기저의 견고한 자존감이 빛났다. 유난히 잘 어울리는 빨간 체크 남방은 무려 15년이 넘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체형이든 물건이든 그 관리법이 궁금해질 따름이다. 채널을 다 보고 나면 이렇게 귀결된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나이 듦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스물다섯 되던 해에 접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괴담’(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아서 25를 기점으로 값이 떨어진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내재화되어 온 공포이기에 마냥 의연하기란 쉽지 않다.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뭐’를 고민하고 있는 현실과, 하루가 다르게 체감하는 체력의 퇴보 앞에서 무력하게 조급해진다. 마흔을 예습하면서 의식적으로라도 어려 보이는 일보다 멋있게 나이 드는 일에 마음을 쏟으려 하고 있다.
그간 대단한 장래희망들을 읊어 왔지만 사실 거의 유일하게 분명한 사실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다.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는 곧 ‘어떤 할머니가 될 것인가’ 아닐까. 61년생인 배우 최화정 역시 냉정하게는 ‘할머니’이다. 다만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빨간 체크와 레드 립, 헤어밴드가 잘 어울리는. 일반의 나이에서 자유로운 그의 모습은 다양한 60대, 다양한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한 ‘캔디’(구독자 애칭)의 댓글을 옮겨본다. “언니를 30대에 만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명랑한 60대를 준비할 수 있잖아요. 언니 덕분에 저의 미래도 기대되고 나이 듦이 두렵지 않아요.”
생활을 잘 돌보고 취향을 잘 가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 미약한 시작으로 인스턴트 가득한 냉장고에 각종 채소와 과일을 들였다. 한때 공들여 골랐지만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린 옷들을 손질해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각기 다른 소재, 핏의 흰 셔츠를 헤아리다 15년이 넘어서도 입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문득 모델 야노 시호 저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패션 아이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흰 셔츠입니다. 몇 살이 되어도 흰 셔츠가 어울리는 여성이고 싶어요.” 흰 셔츠가 어울리는 나의 60대를 상상해 본다. 어쩐지 이제는 반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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