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극성 융합하는 중성자의 ‘정치적’ 역할[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2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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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두 명의 친한 중학교 동창이 있다. 함께한 우정의 세월이 도대체 몇 년인가? 나에겐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들이다. 집 안의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있고, 부부 싸움을 하면 무슨 일로 다퉜는지, 아이들이 어떤 걱정거리를 만들었는지 등등 속속들이 다 안다. 만나자마자 “그건 어떻게 됐어?” 한다. 이렇게 속편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학교 후문 평양냉면집에서 만나 냉면과 빈대떡, 막걸리 한잔을 하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서로 말 못 할 이야기도 없고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사이인데, 가끔 두 명이 다른 의견으로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할 때가 있다. 정치 문제다. 그럴 땐 순간 긴장감이 돈다.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성질이 다른 양극(+)과 음극(―)처럼. 서로 정반대의 의견을 낸다. 심한 경우 한 친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럼 나는 중간에서 그 친구의 손을 잡고 화해를 시키는 입장이 된다. “너희들은 사는 데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서로 왈가왈부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도 없고, 설령 말로 상대방을 이긴다고 해도 달라질 것 없는데, 이런 정치적인 문제는 고양이 발톱처럼 감추고 살면 안 될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순간이 지나면 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오래된 우정을 지키는 길은 하나뿐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것. 지나온 귀중한 우정의 시간은 다시 올 수 없고 만들 수 없으므로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는 기본적으로 원자핵과 이를 둘러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1897년 J J 톰슨은 음전하(―)를 가진 전자를 발견했다. 그 후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양전하(+)를 가진 양성자를 발견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물리학자들은 원자가 양성자와 전자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발전되면서 원자는 양성자와 전자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양성자 옆에 전기적으로 중성적 성질을 띤 입자가 하나 더 있어야만 했다. 전기적 극성을 띠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중성자라고 불렀다. 중성자는 원자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중성자를 발견한 공로로 영국의 제임스 채드윅은 193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우라늄 원자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핵분열이 일어난다. 이 핵분열 과정에서 감마선과 중성자와 함께 엄청난 열에너지가 방출된다. 중성자에 의해 생긴 핵분열 반응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 원자폭탄 같은 폭발력을 가진 핵무기가 된다. 하지만 연쇄반응의 속도를 조절하면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세상은 양전하(+)와 음전하(―)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거의 열기가 과열되는 현실에서, 대립하는 두 극성을 하나로 융합하는 중성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봄이 오고 있다. 동창을 만나 학교 후문 평양냉면집에서 얼음이 둥둥 뜬 냉면에 막걸리 한잔하는 봄날이 기다려진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이기진의 만만한 과학#원자#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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