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 존재 간의 공생[내가 만난 名문장/박선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9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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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가 아니며, 함께 살아감으로써 존재한다.”
―도나 해러웨이, ‘반려종 선언’ 중


박선우 소설가
박선우 소설가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의 책 ‘해러웨이 선언문’에는 그가 발표한 두 가지 선언문이 담겨 있다. 서구 이성중심주의에 따른 이분법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이보그 선언’과 이종 간의 공진화(共進化)를 역설하는 ‘반려종 선언’이다. 두 선언 모두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며 놀라울 정도로 융복합적 사고를 보여주는데, 이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결연’과 ‘공존’의 개념에도 상응하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환원 불가능한 차이를 넘어 이루어지는 소통”이며 우리는 “서로 반려종이 되는 역사에서 육체를 개조(restructure)하고 생명의 암호를 개형(reform)”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무더운 날씨 속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행진하는 도중에 동성애 반대 시위자들의 격한 외침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서울시에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장소를 옮겨 진행한 행사에서도 어김없이 혐오 세력과 맞닥뜨린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읽던 책의 내용을 설핏 떠올리며 같은 종 안에서도 이토록 적대와 몰이해가 만연한데 몸과 언어가 다른 종들이 어떻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며 존중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사고실험에서 도출된 이상향이자 윤리적 꿈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책의 남은 부분을 읽으며 조금씩 생각이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이질적 존재 간의 공생은 선택이나 합의 사항이라기보다 진화와 생존을 위한 조건임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발전과 존립은 차이를 끌어안는 수용의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포용은 달성이 아니라 언제나 그 과정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박선우 소설가


#도나 해러웨이#반려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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