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너지’ 아파트, 공사비 8% 늘듯… “용적률 혜택 확대를” [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8일 2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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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의무화

정순구 산업2부 기자
정순구 산업2부 기자
《내년부터 30채 이상 민간 아파트에 모두 ‘제로에너지건축물(ZEB·Zero Energy Building)’ 인증이 의무화된다. ZEB 등급은 인증 기준에 맞는 기술을 활용해 건물 단열 성능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등 에너지를 절감하는 건축물에 부여된다.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최고 1등급(100% 이상)에서 5등급(20% 이상 40% 미만)까지 나뉜다. 내년에 적용되는 민간 아파트는 최소한 5등급을 받아야 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원자재 값, 인건비 상승으로 분양가가 오르는 상황에 ZEB 인증제가 시행되면 건축비가 오르면서 분양가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특히 정부가 인증 기준에 포함된 기술을 사용했을 때에만 에너지 절감 효과를 인정해줘 지나치게 기준이 엄격하고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ZEB 인증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관련 기술을 좀 더 폭넓게 인정해주고, 건설사에 대한 인센티브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022년 8월 입주를 시작한 광주 광산구의 행복주택 ‘도산 LH 1단지’. 이곳 바닥 난방 시스템에는 다른 공동 임대주택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열판’이 시범 적용됐다. 열전도율을 높여줘 난방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이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 입주한 단지 인근의 또 다른 행복주택 B단지에는 방열판이 설치되지 않았다.

입주 후 난방에너지 사용량에서 두 단지의 격차는 두드러졌다. 송두삼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올해 3월 말까지 두 단지의 난방에너지 사용량을 비교 분석한 결과 방열판이 설치된 도산 LH 1단지가 그렇지 않은 B단지보다 난방에너지를 31.2% 절감했다. 지난달 초까지 조사 기간을 늘리자 절감 효과는 41.0%로 향상됐다.

에너지 절감 효과가 뚜렷하지만, 이 기술을 활용해 건물을 짓는다고 해도 ZEB 등급을 인증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ZEB 인증 대상에 바닥 난방과 관련된 기술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ZEB는 건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 건축물을 뜻한다.

송 교수는 “내년부터 민간으로 확대될 ZEB 등급 인증 의무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이 인증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지금은 에너지 절감 효과가 높은 기술이라도 ZEB 인증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설사 등에서 사용하질 않는다”고 말했다.

● 턱없이 부족한 민간 참여, 공동주택 인증은 1.6% 그쳐

2017년부터 ZEB 인증제도가 시행됐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는 아쉽기만 하다. 제로에너지빌딩 인증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3764개의 건축물이 ZEB 등급을 인증받았는데 민간 부문은 전체의 6% 수준에 그친다. 의무화 대상이 아닌 민간업체의 자발적 참여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의미다.

공공부문에서 인증이 의무화되면서 그나마 인증 건수가 3000건을 넘겼지만, 이마저도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현재 ZEB 등급을 인증받은 건물 10채 중 6채(61.7%)는 최저 요건인 5등급만 충족한 상태다. 1등급을 획득한 건물은 123개(3.3%)에 불과하고 △2등급 111개(2.9%) △3등급 335개(8.9%) △4등급 874개(23.2%) △5등급 2321개 등의 순이다.

공동주택의 경우 ZEB 인증을 받은 곳은 극소수에 그친다. 현재까지 ZEB 등급을 인증받은 단지는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59곳에 불과하다. 51곳은 설계 단계에서 평가하는 예비인증 단계에 머물고 있고, 준공 시점에 이뤄지는 본인증을 받은 곳은 8개 단지뿐이다. 그마저도 인천 연수구의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886채)와 경기 화성시 ‘e편한세상 남양뉴타운’(604채) 등을 제외하면 빌라나 한 동짜리 소규모 아파트다.

● 건설사 “기술 확보 어렵고 공사비 인상 불가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 절감이 가능한 기술을 사용하고 싶어도 ZEB 인증 대상에 포함된 기술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A건설사 관계자)

건설업계에서는 ZEB 인증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원인으로 ‘지나치게 경직된 인증 기준’을 꼽는다. ZEB 인증 등급은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달라지는데, 자립률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나 창, 벽체, 외벽, 지붕 등에 적용한 기술로 한정된다. 해당 기준에서 벗어난 기술로는 아무리 높은 에너지 자립률을 확보하더라도 ZEB 인증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대안 마련을 촉구하며 “국토교통부가 ZEB 인증제도를 다각도로 활성화하기보다 단열·창호·설비·친환경 환기 시스템 같은 그린리모델링 사업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사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조성할 때 비주거 건축물의 경우 공사비용이 30∼40% 이상 추가 투입되고, 공동주택 공사비는 표준건축비 상한가격 대비 4∼8%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계에서는 ZEB 인증 의무화 제도의 민간 부문 확대를 두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인상으로 안 그래도 공사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ZEB 인증까지 받게 되면 공사비의 추가 인상이 불가피한 탓이다.

국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는 ZEB 등급을 인증받을 기술력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분양가 상승으로 청약 시장이 더 침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중견·중소 건설사는 공사비 인상 걱정 전에 ZEB 등급 인증을 위한 기술력 부족부터 해결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 “올해 말까지 ZEB 적용 기준 완화 추진”

정부도 이 같은 불만이 쏟아지자 최근 ZEB 인증 의무화 제도의 적용 기준 완화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민간 건설업체 등과 논의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ZEB 인증 기준에 포함되지 않은 기술도 에너지 절감률만 입증된다면 에너지 자립률 총량에 포함하는 방식 등을 검토 중”이라며 “늦어도 올해 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ZEB 인증 기준이 단열·창호·설비 등으로 제한돼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고, 중소 건설사를 중심으로 ZEB 인증을 위한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공사비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많은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ZEB 인증 의무화 자체를 미루기는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2018년 5210만 t 수준이던 건물 분야 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620만 t으로 88.1% 줄일 계획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이 ZEB 인증제도다. 국내 건축물의 약 75%는 준공 후 15년이 지난 노후 건축물이라 에너지 성능 저하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추가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ZEB 인증제도는 부여된 등급에 따라 건물을 지을 때 적용되는 용적률과 건물 높이 제한을 최대 15%까지 완화할 수 있다. 정부는 2021년부터 관련 혜택을 최대 20%로 상향하려 했지만, 관련 법령인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개정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ZEB 인증 통과 시 건축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더 커져야 민간업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며 “특히 ZEB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의 90% 이상이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인데, 이들에게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더 효율적인 기술이 시장에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순구 산업2부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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