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떠오른 베트남, 맞을 준비 부족한 한국[광화문에서/유성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2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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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사회부 차장
유성열 사회부 차장
“최근 주목할 만한 큰손은 베트남 관광객이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는 게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서울시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코로나19 엔데믹과 함께 폭발하는 베트남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고민하고 있는데, 입국 규제가 엄격한 탓에 관광객을 더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한국관광공사의 ‘2022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230.7% 급증한 319만8017명으로 집계됐다. 미국이 54만364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 중국 필리핀 순이었는데 5위는 베트남(18만5061명)이었다.

베트남은 현재 아시아에서 중산층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국가 중 하나다. 베트남 통계총국에 따르면 2011년 인구의 7.8%에 불과했던 중산층 비율은 2019년 20.2%로 급증했다. 세계은행은 베트남의 중산층 인구가 2045년 5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트남 인구의 절반이 탄탄한 소비 여력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관광통계를 보면 2017년 1인당 1213.5달러를 썼던 베트남 관광객은 지난해 3974달러(약 530만 원)를 쓰고 돌아갔다. BC카드가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가맹점 소비 현황을 분석했더니 베트남 관광객의 1인당 평균 승인금액(19만7000원)은 전년보다 89% 증가했고, 일본(18만8000원), 중국(17만1000원), 대만(12만6000원) 등을 모두 앞선 1위였다. 베트남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소비한 업종 역시 면세점, 백화점, 병원, 화장품 등의 순이었다. 베트남 관광객이 한국 관광·유통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베트남인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베트남은 비자면제국이 아니어서 관광비자를 받아야 입국이 가능하다. 근로계약서나 재학증명서 등 본인 신분을 입증하는 서류는 물론, 일정 금액 이상이 든 통장까지 제시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요건을 갖췄더라도 비자 발급이 거부될 때가 종종 있다”며 “한국 관광을 계획했다가 비자 발급이 거부되자 취소하는 사례도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비자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안을 가져오라”고 법무부에 지시했고, 법무부는 다음 날 윤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경우 1년간 한시적으로 3인 이상 단체관광객까지 단체전자비자를 발급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관광·유통업계는 한 발 더 나아가 베트남을 비자면제국으로 지정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법무부로서도 쉽지 않은 조치다. 베트남 출신 불법체류자(7만8235명)가 태국에 이어 2위일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 업계는 법무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기대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은 ‘한국 방문의 해’이기도 하다. 정부와 지자체,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베트남 큰손을 잡을 묘책을 더 궁리해야 할 이유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베트남 관광객#입국 규제#베트남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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