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은 이제 그만”… 폭스도, CNN도 간판 앵커 내쳤다[횡설수설/이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6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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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을 모욕하고 격하시키는 인사다. 미국을 르완다처럼 만들려는 것인가.”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터커 칼슨이 지난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임명을 두고 내놓은 논평이다. 성 차별주의자,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첫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이 탄생했을 때는 “(민주당) 이민 정책이 국가에 위험이 된다는 증거”라고 했고,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미국을 불결하게 오염시키는 이들”이라고 했다.

▷케이블 뉴스 채널의 후발주자였던 폭스뉴스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은 보수층을 집중 공략하는 극단적 편향성이었다. 거친 입담의 앵커들이 선봉에 섰다. ‘터커 칼슨 투나이트’는 매일 평균 320만 명이 시청하는 간판 프로그램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7년간 승승장구했던 그를 무너뜨린 것도 본인의 입이었다. 폭스뉴스는 24일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2020년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가 1조 원대 배상금을 물어주기로 합의한 지 6일 만이다.

▷같은 날 폭스뉴스와 정반대 진영인 CNN의 간판 앵커 돈 레몬도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여성은 잘해야 40대까지가 전성기”라는 최근 발언이 문제가 됐지만 그는 이전에도 남녀 스포츠 선수의 연봉 격차를 당연하게 해석하는 등 수차례 여성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흑인 성소수자 앵커로 민주당 정부의 진보 정책을 노골적으로 옹호해 온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생방송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그의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인사들이 늘면서 CNN은 출연자 섭외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한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막말이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이는 다시 미디어를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돼 온 게 미국의 현실이다. 인종과 여성, 낙태, 총기 규제 등 양쪽 진영의 지지층을 각각 결집할 첨예한 사회 이슈들도 늘었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촉발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레몬이 격분하는 사이 칼슨은 “플로이드는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다”는 허위 주장을 버젓이 반복했다.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의회가 쑥대밭이 돼 있을 때는 “온순하고 정돈된 의회 관광객들”이라고 옹호했다.

▷‘폭스 효과(Fox effect)’란 표현은 매체의 편향성이 언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뜻하는 부정적 표현이다. 자극적 주장에는 가짜뉴스나 음모론이 따라붙는다. 막말이 판치는 환경은 팩트를 지루하고 유약한 것으로 왜곡시켜 버리기 십상이다. 정치권 인사부터 1인 미디어 유튜버까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국내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를 결국 어떻게 치르게 되는지를 추락한 간판 앵커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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