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 개점한 파리의 명소 ‘투르 다르장’[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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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결혼기념일을 맞아 파리 5구에 위치한 ‘투르 다르장’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파리에서 이 정도로 훌륭한 뷰를 갖춘 식당은 드물다. 센강과 노트르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투르 다르장의 시작은 15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토라는 이름의 요리사가 투르넬 강둑에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야생 오리로 만든 파테가 인기였다. 앙리 3세, 루이 14세 등과 왕족들이 식당을 찾았다. 앙리 3세가 이 식당에서 세 갈래 포크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보고 신기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미뤄 파리에서 포크를 처음 사용한 곳으로 전해진다.

격동의 프랑스 대혁명을 거친 이후 나폴레옹 1세의 왕실 조리장이던 르코크가 투르 다르장의 새 주인이 됐고, 1890년대엔 홀 지배인 출신인 프레데리크 들레르가 프레스로 오리를 짜 내는 대표 메뉴를 선보이면서 오리 고기가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문을 닫았다가 1918년 다시 문을 열면서 이집트 왕의 전속 요리사였던 프랑수아 레피나를 영입해 마르셀 프루스트, 살바도르 달리 등이 단골로 드나드는 세계 최고의 미식 레스토랑이 됐다.

이 레스토랑은 1933년 미슐랭 가이드북에서 별 셋의 평가를 받았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인이었던 클로드 테라이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통로를 봉인해 50만 병의 와인을 숨겨 지켜냈다. 지금도 30만 병의 와인을 보유하고 있다. 레스토랑이 보유한 1788년산 코냑은 한 병에 7000만 원을 호가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존 F 케네디, 매릴린 먼로 등 국가원수, 정치인, 스타, 예술가들이 찾는 파리 최고의 명소였다.

그러나 1996년 60여 년간 유지했던 미슐랭 3스타의 명예를 잃는 시련을 겪는다. 경쟁 레스토랑에 비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너무 비싼 가격을 고수한다는 이유였다. 투르 다르장은 2016년 절치부심한 끝에 필리프 라베 셰프를 영입해 다시 미슐랭 1스타에 올랐다. 지금은 야니크 프랑크가 주방을 지휘하고 있다.

식당을 찾으면 근사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테이블에 앉아 아뮤즈 부슈(식전 요리)와 앙트레(전식)를 먹는 사이 시그니처 메뉴인 ‘피 없는 오리 메뉴’(사진)가 나온다. 홀에서 오리가 접시에 닿지 않게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와 기름을 프레스 기계로 압착해 오리 소스를 만들어 서빙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클래식한 서비스 방식이다. 와인 소믈리에는 파라핀 초를 켠 뒤 와인에 침전물이 따라 나오는지를 관찰하며 디캔터에 와인을 따르는데, 이 또한 전통 방식대로 서비스하는 곳이 흔치 않아 특별하다.

2003년 100만 번째 오리를 서비스했고, 이 레스토랑을 처음 찾았던 2017년 10월 나는 115만9194번째 오리를 먹었다는 증서를 받았다. 오리 고기 단일 메뉴로 100만 명 이상이 즐겼다는 사실만으로 투르 다르장은 기네스북에 올랐다. 축복받아야 할 누군가의 기념일, 아니 죽기 전에 한 번쯤 들를 가치가 충분히 있는 파리의 명소가 분명하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파리 명소#투르 다르장#시그니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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