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뇌물 ‘마오타이’ 대신 ‘팍스로비드’[특파원칼럼/김기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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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가격에 수량도 적어 일부 부유층만 접근
웃돈 주고 사재기, ‘의료불평등’ 민낯 드러나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서 마오타이(茅台)는 ‘국주(國酒)’라고 불린다. 수많은 중국 술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힌다는 얘기다. ‘최고의 술’이다 보니 값도 만만찮다.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21년 기준 53도짜리 마오타이는 500mL 한 병 출고가가 1499위안(약 27만3000원)이다. 출고가가 이 정도니 일반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가격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표적 전자상거래업체 징둥닷컴에서 많이 팔린 마오타이의 가격은 2999위안(약 54만7000원)∼5659위안(약 103만2000원) 사이였다.

마오타이는 오래될수록 가격이 오른다. 2019년 7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1958년 생산된 마오타이는 120만 위안(약 2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마오타이를 사서 몇 년만 보관하고 있으면 값이 오른다. ‘주(酒)테크’, ‘마오(茅)테크’란 말이 나올 정도다. 술이 돈이 되다 보니 뇌물로도 손색이 없다. 뇌물 공여자들은 술을 받는 것이 현금을 받는 것보다 죄책감이 덜하다는 권력자들의 심리를 잘 파고들었다. 2017년 가을 왕샤오광(王曉光)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부성장은 마오타이 4000병을 뇌물로 받은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마오타이가 부패와 사치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뇌물로 마오타이 대신 ‘팍스로비드’가 뜨고 있다. 팍스로비드는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다.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외국산 코로나19 치료제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7일 철저한 봉쇄와 격리로 대표되는 ‘제로 코로나’ 정책 폐지를 선언했다. 이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중국 전체 인구 14억 명 가운데 8억 명이 감염됐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올 정도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약을 찾다 보니 감기약, 해열제 등은 진즉 동이 났다. 병원에서는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복도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국 부유층은 팍스로비드를 웃돈을 주고 선점하거나 사재기하고 있다.

중국은 3월 상하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무더기로 발생하자 팍스로비드 2만1200상자를 처음으로 수입했다. 이후에도 수십만 상자를 들여왔지만 수요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530달러(약 67만 원)인 제품이 중국에서는 8300위안(약 152만 원)에 팔리고 있다. 이마저도 물량이 없다. 베이징의 한 병원 관계자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12월에 들어온 팍스로비드 300상자가 24시간 만에 매진됐다”면서 “다음 물량은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FT는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이 팍스로비드를 사 갔다”면서 “마오타이보다 더 선호하는 비즈니스 선물이 됐다”고 꼬집었다.

팍스로비드가 ‘관시(關係·인적 네트워크)’ 1호 선물로 떠오르는 것은 중국의 의료·보건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고령층이나 중증 환자들이 먼저 팍스로비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부터 줄곧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살기)’를 강조하고 있다. 공동부유는 공산주의의 근본 목표라는 말도 했다. 다 함께 잘살기 위해서는 다 함께 건강해야 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공산주의 체제답게 중국은 지금보다는 좀 더 평등한 의료 시스템 체계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마오타이#팍스로비드#의료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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