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동아시론/이범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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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약사범 역대 최고치 경신 가능성
거래 손쉽고 다양화, 대중적 확산 우려 커져
수사뿐만 아니라 예방·치료 정책도 강화해야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마약퇴치연구소장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마약퇴치연구소장
마약사범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은 2019년 1만6044명, 2020년 1만8050명, 2021년 1만6153명으로 해마다 1만5000명을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1∼7월 붙잡힌 마약사범이 1만575명이 됐다. 이대로라면 올해 마약사범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마약 압수량도 2017년 154.6kg에서 지난해 1295.7kg으로 4년 새 8배로 늘어난 상황이다.

정부 통계로 드러난 숫자가 이 정도다. 숨어있는 마약사범이 적게는 40만 명, 많게는 100만 명을 상회할 것이라는 추산까지 나온다. 특히 10, 20대 마약사범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더욱 우려된다. 우리나라를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라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 이미 됐다.

마약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중독성과 내성 그리고 금단 증상을 보이는 물질이다. 특히 중독성이 커서 한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어렵고, 스스로의 인간 존엄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파멸시킬 수 있다. 또한 중독이나 환각 상태에서 교통사고나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비용을 크게 상승시킨다. 본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 마약이다.

하지만 마약 근절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거래 양상이 은밀해지고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다크웹을 통한 마약 거래가 성행한다. 분류가 모호한 향정신성 약물을 불법적으로 과다 투약해 중독되는 사례도 많다. 마약사범 가운데 약 70%가 투약 사범이다. 재범률과 재수감률이 대단히 높은 ‘스스로 끊기 어려운 범죄’다.

과거 부유층이나 유학파 등이 다수를 이뤘던 마약류 범죄는 이제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마약사범 가운데 무직이나 저소득층을 포함한 사회적 취약계층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실험이 있다. 1978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의 이른바 ‘쥐 공원’ 실험 결과다. 협소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쥐들이 쾌적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사는 쥐들에 비해 마약 섞인 물을 16배까지 더 많이 마신 것. 사회적 취약계층의 복지 체계 미비 등이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사회적 비용 증가로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약 문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사안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마약 청정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마약의 위험성에 대한 철저한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와 많은 민간단체들이 마약류 예방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 대상에 대한 맞춤형 콘텐츠 부족과 실효성에 관한 문제가 많이 제기돼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대상별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구축이 중요하다. 둘째, 마약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불법 사범들을 관련 기관들이 철저하게 단속하고, 필요시 형량을 높이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셋째, 관련 정부 부처들을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명목상 국무조정실 마약류 대책협의회가 있긴 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현재 마약류 관리와 단속 업무는 대검찰청, 경찰청, 관세청,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정부 부처들에 흩어져 있다. 마약범죄 수사와 관리는 그 특성상 많은 정보 조직이 힘을 합쳐야 하며 정부 부처 간 유기적인 협력과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 여러 국가가 얽히고설킨 범죄인 만큼 국제적인 공조와 단속 역시 절실하다. 끝으로, 인간 중심의 치료 및 재활을 포함한 적극적인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마약 중독자들도 치료와 재활을 잘하면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중독 치료와 재활에 투자한 비용이 장기적으로는 10∼20배의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둔다는 선진국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실례로 스웨덴의 바스타, 이탈리아의 산파트리냐노 같은 치료·재활·교정 시설은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재활 치료를 통하여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수사도 필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마약 정책 및 관리에 대한 인식 전환을 하고, 관련 제도 및 예산 마련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국민 스스로도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단순 호기심에 접하더라도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큰 게 마약이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 교수·마약퇴치연구소장
#마약#마약사범 증가#마약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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