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의 최고의 낙, 맛있는 식사[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67〉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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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어선 선원들의 맛있는 식사 모습이 TV 화면에 자주 잡힌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으로 찌개를 직접 끓여서 먹는다. 어선에서 식사 담당자를 화장이라고 한다. 처음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맡는 직책이다. 자질구레한 일까지 한다. 상선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자를 ‘뽀이’라고 한다. 선장 담당을 ‘사롱뽀이’, 다른 사관 담당을 ‘매사롱뽀이’라고 불렀다.

어선 선주들은 출어를 위해 2, 3일 식사용 부식을 준비해 줘야 한다. 갑자기 강풍이 불게 되면 선원들은 바다로 못 나간다. 외지에서 고용된 선원들은 선주의 집에서 며칠을 보냈다. 우리 집 사랑채 2칸도 이렇게 사용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우리 식구에 선원들까지 20여 명이 먹을 밥을 준비했다. 우선은 양이 많아야 한다. 귀한 쌀은 조금 넣고 싼 국수는 많이 넣는다. 그리고 양념으로 김치를 넣는다. 이렇게 휘휘 저어서 먹는 김치국밥은 고픈 배를 채우기에 넉넉했다. 도루묵이라는 생선을 선원들이 가지고 와서 된장을 넣고 끓였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이때 맛을 들인 도루묵 된장찌개를 나는 지금도 좋아한다.

상선에서 식사는 하루 네 번 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야식이다. 점심은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당직을 마친 2등 항해사는 이때 일어나 점심을 먹는다. 그는 새벽 2시경에 아침용 야식을 한다. 당직 중이므로 선교를 비울 수가 없다. 그래서 당직 타수가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만들어서 선교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한다. 육지에서 있었던 연애 이야기 등 허풍스러운 이야기가 양념이 된다. 저녁은 오후 6시부터 8시경까지다. 느슨한 시간이다. 1등 항해사의 당직 시간은 오후 4시에서 8시까지다. 오후 8시에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늦다. 식사 교대라는 관행이 있다. 3등 항해사가 30분 정도 1등 항해사의 당직을 대신 서는 동안 1등 항해사가 후딱 저녁을 먹는다. 오후 6시 반경에 이루어진다. 오후 7시 반까지 저녁을 먹는 1등 항해사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후 8시부터 당직이 시작되는 3등 항해사는 고역이다. 불만이 쌓인다.

좁은 공간에서 1년을 살아가는 선원들에게 최고의 낙은 식사를 맛있게 그리고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선장은 이를 잘해야 존경받는다. 부식비는 선원당 얼마로 책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선장이 살림을 잘해야 한다. 싱싱한 야채는 한국에서 싣고, 쌀과 오렌지, 고기는 질도 좋고 저렴한 미국에서 싣는다. 대규모 냉동실에 보관한다.

1주일에 한 번씩 소금구이가 나오는 저녁 식사를 매번 기다렸다. 차돌박이와 흡사한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아주 얇게 만들어서 불판에 올리고 소금을 약간 친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이를 소금구이라고 부른다. 익은 고기를 참기름에 듬뿍 찍어서 먹었다. 얼마나 맛있는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더 많이 먹는 비결이 있다. 식전에 탁구를 쳐서 배를 더 시장하게 준비해 두면 된다. 소주 한잔을 걸치면서 통상 3, 4인분을 먹어치운다. 약간 취한 상태가 되어 깊이 잠들어 고향에 두고 온 여자 후배의 얼굴이라도 떠오르면 행복하다. 이 기분으로 선원들은 힘들지만 배를 계속 탄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바다#최고의 낙#맛있는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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