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10년 후 서울대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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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규정과 규제, 내부 갈등에 방향성 잃어
인재유치, 발전기금 해외대학에 턱없이 밀려
재정 틀 바꾸고 정치논리 벗어나야 미래 있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필자는 언론에 기고하면서 ‘정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필자의 전문 분야가 아닌 주제에 대해서는 안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번 한번은 예외적으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얘기를 쓰려고 한다.

서울대는 법인화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너무나도 많은 관료주의적 규정과 과도한 규제, 정치적 압력, 여기에 내부 구성원들의 기득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맞물려 방향성을 잃었다.

대학의 기본 기능은 교육과 연구다. 따라서 대학의 성장은 물론이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인재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교수 정원이 정부예산으로 묶여 있고 예산에서 정부출연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제때 첨단 분야의 교수 충원이 불가능하다. 또 정부를 설득해 교수 자리 몇 개 만들 예산을 더 받아와도 학내 정치 때문에 첨단 분야에 집중 지원해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총장을 투표로 뽑는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교수를 대폭 증원해 주면 단과대학 간 권력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한 타 단과대학의 표를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동문이 창업한 기업의 매출이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2배가 넘어가는 4차 산업혁명은 남의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백신으로 유명한 ‘모더나 테라퓨틱스’는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인 로버트 랭거와 하버드 의대 교수인 데릭 로시, 팀 스프링거가 공동 창업한 회사다. 대학이 인류를 구한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는 교수 자리 하나 늘리기도 어렵다. 심지어 서울대병원 운영으로 자금력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법인이 분리돼 있기도 하지만 총장 선거에서 의대 ‘머릿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는 다른 단과대학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 제로섬 게임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서울대에 미래는 없다.

거기다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연봉도 글로벌 선도 대학의 약 3분의 1에서 2분의 1, 국내 경쟁 대학의 70%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단과대학 간 ‘균형’까지 고려해야 해서 아직도 공무원식 호봉제를 적용하다 보니 첨단 분야에서는 해외 대학이나 글로벌 기업과의 연봉 차가 더 크다.

그동안 ‘가족이 한국에 있지 않느냐’는 유인책으로 인재 유치를 해 왔지만 이마저도 힘들어지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정권에서 산업 발전을 이끌 인재들을 귀국시킬 때는 ‘애국자’로 치켜세우며 최고의 예우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런 환경에 구글이나 애플의 인재들에게 연봉을 3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오라고 한다면 서울대에 대한 애정이 아무리 남달라도 고민이 깊을 것이다. 이런 대학에 미래가 있을까.

서울대의 미래는 현재보다 더 암울하다. 현재 서울대의 발전기금은 하버드대의 110분의 1, 스탠퍼드대의 80분의 1, 싱가포르국립대의 20분의 1 수준이다. 이 대학들은 발전기금을 글로벌 벤처캐피털에 투자해 10년 평균 연 12% 정도의 수익을 올린다. 예일대의 경우 36년 연평균 수익률이 13%를 넘는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글로벌 벤처캐피털에 투자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복리가 적용돼 10년이면 3배로 불어나는 수익률이다.

이들 대학은 전체 발전기금의 5% 정도를 매년 교육과 연구에 투입한다고 알려져 있다. 발전기금도 계속 늘리면서 대학 발전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향후 10년간 발전기금에서만 하버드대는 52조 원, 스탠퍼드대는 37조 원, 싱가포르국립대는 10조 원을 교육과 연구에 누적 투입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대에는 이런 체계 자체가 아예 없다. 지금대로라면 매년 국감장에서 총장이 불과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10년 후 서울대가 이 대학들과 함께 언급이라도 될 수 있을까.

정부출연금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어차피 정부출연금 증액으로 해외 대학들을 추격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출연금을 얼마나 올려줄까. 같은 이유로 미국의 많은 주립대학이 예전 명성을 잃었다. 예산에서 정부출연금 비중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글로벌 선도 대학들처럼 글로벌 벤처캐피털에 투자하기 위해 발전기금 운용지침을 개정할 명분도 약하다.

재정의 틀을 바꾸고 정부출연금 의존도를 낮춰 교육부와 국회의 정치 논리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면 서울대에 미래는 없어 보인다. 물론 먼저 대다수 서울대 구성원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변화’에 대한 열망을 표출해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대라는 거대한 배가 진행 방향을 틀 수 있을까.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서울대 위상#인재유치#정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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