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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음악계 신(新)노벨상, ‘케이팝 작곡상’을 상상하며

입력 2022-08-11 03:00업데이트 2022-08-1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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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 하우스에서 열린 폴라음악상 시상식 장면. 그해 수상자 스팅을 축하하는 공연에서는 미국 재즈 가수 그레고리 포터와 스톡홀름 왕립 관현악단이 무대를 꾸몄다. 출처 Bedow 홈페이지
임희윤 기자
스칸디나비아 취재를 세 차례 다녀온 이후, 북유럽 뉴스 검색하는 재미에 산다. ‘스웨덴’ ‘스톡홀름’ ‘헬싱키’부터 ‘페로제도’ ‘토르스하운’까지…. 포털 검색창에 온갖 북구 관련 키워드를 넣고 튀어나오는 기사를 닥치는 대로 보는 게 삶의 낙이다.

#1. ‘허준이 교수 한국계 최초 필즈상 수상’ 기사를 봐도 대수기하학이나 로타 추측 같은 말보다 수상 지역인 북유럽의 핀란드, 헬싱키에 더 눈이 간다. 그러고 보니 필즈상을 일컬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한다. 역시 북유럽인 스웨덴이 낳은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수학을 싫어했을까. 왜 ‘노벨 수학상’은 없을까. 실제로 ‘노벨이 수학에 관심이 없어서’라는 설도 있다.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를 두루 아우르는 놀라운 스펙트럼의 노벨이…. 위대한 발명가도 수학에 관심이 없었다니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하나로서 위안이 된다.

#2. 그러고 보니 ‘노벨 건축상’도 없지 않나? 프리츠커상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아뿔싸! 중요한 게 또 빠졌다. ‘노벨 음악상’이다. 음악을 경시하는 위인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런데 노벨 음악상은 제정될 뻔한 적이 있다. 스웨덴이 낳은 위대한 팝 그룹 아바. 그들의 매니저이자 작사가였던 스티그 안데르손이 왕실에 노벨 음악상 제정을 강력하게 건의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안데르손은 씩씩거리며 결국 1989년, 사비를 털어 ‘폴라 음악상’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아바로 떼돈을 번 자신의 음반사 ‘폴라 뮤직’을 수백만 달러에 매각한 돈을 쏟아부었다.

#3. 초여름 볕이 조도를 높이던 6월, 서울을 찾은 두 명의 스웨덴 여성을 만났다. 스톡홀름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듀오 루이스 프리크 스벤(28)과 마리아 마르쿠스(42)다. 마르쿠스와는 5년 만의 재회다. 2017년 스웨덴 음악진흥원 초청으로 현지 음악 산업 현장을 취재할 때 처음 만났다. 조용필의 ‘Hello’, 레드벨벳의 ‘7월 7일’을 작곡해 한국 시장에 이름을 알리던 때였다. 같은 작곡가 회사에서 마르쿠스의 후배이자 인턴 작곡가로 출발한 스벤은 ‘폭풍 성장’해 마르쿠스와 어엿한 콤비가 돼 있었다. 방탄소년단 정국, 트와이스, 엑소 등의 곡을 둘이서 합작했다.

#4. 곡을 만들어 영국, 호주, 일본 시장에 주로 팔던 마르쿠스는 케이팝을 만나 꽃을 피웠다. 신세대 주자로서 좀 더 어릴 때부터 케이팝을 접한 스벤은 “아예 한국에 이주해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구 반대편 스웨덴의 전형적인 20대 후반 청년인 그가 “한국의 문화와 생활 방식 모두가 너무너무 맘에 든다. 실제로 영주할 곳을 알아보기도 했다”며 눈을 반짝일 때는 가벼운 소름마저 돋았다.

#5. 필자는 문화부 기자 몇 명과 함께 2013년, ‘세계는 지금 케이팝 조립 중’이라는 시리즈 취재를 했다. 당시 이미 샤이니의 춤, 소녀시대의 노래가 미국의 안무가나 노르웨이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내 SM, YG, JYP 3사의 가수를 위해 곡을 쓰는 작곡가가 당시에 이미 317명에 이르렀다. 케이팝이 글로벌 대표 장르 중 하나로 올라선 지금은 거의 모든 케이팝 그룹이 해외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Dynamite’도 영국 작곡가 두 명의 작품이다. 사실 그 협업의 역사는 오래됐다. 1998년 S.E.S.의 ‘Dreams Come True’는 핀란드 작곡가 리스토 아시카이넨의 작품, 2002년 보아의 ‘No. 1’은 노르웨이 작곡가 시구르 헤임달 뢰스네스의 곡이었다. 20년 이상 된 일이다.

#6. 이만하면 이제 이른바 선진국에서 주는 상을 받으려 아등바등할 필요 없지 않을까. 가칭 ‘케이팝 작곡상’ 제정을 제안한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가수들에게만 트로피와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지 말고 그 뒤에 숨은 진짜 주인공, 전 세계의 작곡가들을 한국에 불러 한바탕 잔치를 열고 상도 좀 폼 나게 뿌려 보자는 거다.

#7. 2013년 스톡홀름에서 참석했던 폴라 음악상 시상식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가 직접 건넨 트로피를 받은 인물은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와 세네갈의 음악가이자 문화관광부 장관인 유수 은두르. 수상자의 작품은 시상식 무대에서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제정자인 안데르손의 딸 마리 레딘의 저택에서 펼친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는 전 세계의 언론과 음악계 관계자들이 몰려와 샴페인 잔을 부딪쳤다.

#8. 안데르손처럼 사재는 못 털어도 뒤풀이 장소를 제공할 용의는 있다. 일단 집값을 모으는 중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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