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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미켈롭 가이[삶의 재발견/김범석]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입력 2022-06-24 03:00업데이트 2022-06-24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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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얼마 전 골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었다. 눈앞에서 타이거 우즈가 샷을 치는 믿을 수 없는 경이로운 순간. 모든 사람이 그 순간을 영원히 기록해 두기 위해 동영상을 찍으며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을 때, 단 한 사람만 우즈를 온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주리주의 골프 팬 마크 래더틱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미켈롭’ 맥주캔을 들고 경건한 표정으로 우즈의 샷을 지켜보았다. 눈앞의 우즈를 온전히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래더틱은 ‘미켈롭 가이’라 불리며 단숨에 유명해졌다.

참으로 인상 깊었다. 폰 안에 영원히 저장하는 대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감상하다니. 사실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여행 가서도 멋진 풍경 앞에서 주야장천 사진만 찍다가 정작 그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인터넷에서 그 여행지를 조금만 검색해 보면 내가 찍은 것보다 더 멋진 사진이 널려 있는데.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마지막을 지켜봐야 하는 임종의 순간, 임종실에서 사람들은 환자를 잘 보지 않고 심전도 파형이 나오는 모니터를 쳐다본다. 의사가 진료할 때도 다르지 않다. 의사도 환자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쳐다본다. 가끔 어떤 환자는 의사 뒤쪽으로 와서 의사 뒤통수 너머로 의사와 함께 모니터를 보기도 한다. 화면 속에 대체 뭐가 있나 궁금한 것인데,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 그러나 서로 같은 걸 본다고 한들 모니터만 보면서 대화하면 교감이 될 리 없다.

강의할 때도 학생들과 교수는 서로를 보지 않고 파워포인트 화면만 본다. 교수들은 강의를 준비하면서 파워포인트를 예쁘게 만들고 나면 이미 강의를 잘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학생들은 강의 파일을 내려받으면 이미 강의를 다 들은 것만 같다. 강의 파일이 ‘저장’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나머지 정작 강의는 제대로 듣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교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스마트폰으로 멀티태스킹 하느라 바쁘다. 나중에 필요하면 저장된 파일을 열어보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시험 직전에도 그 파일이 다시 열리는 경우는 드물다. 마치 훗날 이 순간을 추억하겠다고 열심히 찍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 수북이 쌓여 있는, 그래서 찾기도 어렵고 결국 다시 보지 않는 스마트폰 속 수많은 사진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어떤 순간을 온전하게 느끼고 즐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마트폰 속이 아닌 내 머릿속, 마음속에 깊이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묻고 싶다. 지금도 열심히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당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는지.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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