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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北 핵고도화 맞서려면 대북 확장억제를 ‘확장’해야

입력 2022-06-14 03:00업데이트 2022-06-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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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 속에 2일(현지 시간) 미 본토에서 날아온 B-1B 전략폭격기가 괌 앤더슨 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사진 출처 미 인도태평양사 홈페이지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앤드루 퍼터 영국 레스터대 교수는 저서 ‘핵무기의 정치(The Politics of Nuclear Weapons)’에서 이스라엘 핵정책의 중심에는 ‘핵모호성(nuclear ambiguity)’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는 ‘팩트’로 인정되지만 이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 때문에 국제적 비난을 회피하고, 자국 안보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주변 아랍국과의 거듭된 전쟁 이후 미국의 묵시적 동의하에 이스라엘이 개발한 핵무기의 억지력은 무기 자체보다도 모호성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이는 한미의 대북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끝난 당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겨냥한 대적(對敵) 투쟁 등 ‘강대강(强對强)’ 정면승부를 선언하면서 7차 핵실험까지 준비하는 북한을 저지하려면 뻔한 패를 다 보여주는 기존의 확장억제책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 확장억제 조치는 20여 년에 걸친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북한의 도발 때마다 한미는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략폭격기와 핵추진 항공모함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북한의 핵무력이 미 본토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자 미국이 워싱턴과 뉴욕을 포기하고 한국을 지키겠냐는 ‘확장억제 회의론’까지 제기되는 판국이다. “북한이 대북 확장억제를 ‘종이호랑이’로 여기지 않고서야 핵무력을 이렇게까지 고도화할 수 있었겠냐”는 군 안팎의 지적을 한미 당국은 곱씹어봐야 한다.

북한의 핵능력이 증강될수록 지금 방식의 대북 확장억제는 ‘무뎌진 칼’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수소폭탄급 전략핵과 다량의 전술핵으로 한미를 동시에 조준하면 대북 확장억제를 비롯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북핵 대응 및 방어의 우선순위를 두고서 한미 간 ‘동맹 디커플링(분리)’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북핵 위협에 대처하려면 대북 확장억제의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그 일환으로 한국의 핵무장을 제외한 모든 옵션을 대북 확장억제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한미가 추진해야 할 때라고 필자는 본다. 대북 확장억제의 범위를 북한의 핵위협에 상응해서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게 넓혀가자는 얘기다. 이를 통해 대북 확장억제가 ‘엄포’가 아님을 북한에 확실히 각인시키고, 핵도발을 하면 북한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수단과 방식으로 보복을 당할 것임을 주지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주변에 미국의 핵전력을 상시 순환 배치하는 한편 북한의 핵위기 고조 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 같은 전술핵 배치 등도 확장억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미국의 핵잠수함을 한미가 공동 지휘하거나 괌에서 한미 공군의 전투기가 전술핵 투하 훈련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미국이 전략핵잠수함(SSBN)에 실전 배치한 1kt(킬로톤·TNT 1000t의 폭발력) 미만의 ‘저위력핵무기’를 대북 확장억제의 주축으로 활용하는 조치 등도 검토될 수 있다.

이런 방안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강력히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북한의 핵개발을 이 지경까지 방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을 정조준한 작금의 북핵 위협이 주변국 입장을 고려할 만큼 한가로운 상황도 아니다. 북핵 사태를 계속 수수방관하거나 한미 대응에 ‘딴지’를 건다면 지구적 핵확산을 초래하는 자충수가 될 것임을 두 나라에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향후 대북 확장억제 기조는 북한의 ‘핵도발 문턱’을 높이고, 남북 간의 ‘핵균형’을 견지하는 데 집중돼야 할 것이다.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핵’이 대북 확장억제 수단으로 처음 명기된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외신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북한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유화적인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핵·미사일 협박’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북한이 절감토록 대북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게 그 첩경일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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